이석연 전 법제처장 “양심적 병역거부 확대 신중했어야”

입력 2021-06-27 17:48


비(非)여호와의증인 신도이자 성소수자인 남성이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 활동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난 24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인정받았다.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평가와 ‘양심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나라 제1호 헌법연구관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헌법상 병역의무 예외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처장은 대법원 판결 후 이뤄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법원이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헌법을 연구해온 헌법주의자가 대법원의 판단이 아쉽다고 말한 것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이 전 처장은 1988년 헌법재판소 출범 후 제1호 헌법연구관으로 일했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법제처장을 지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4)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이 아닌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허용한 첫 사례다. 대법원은 A씨의 현역 입영거부를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봤다. “A씨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전 처장은 “군대는 국가 존립의 1등 공신이고,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한 헌법상 권한이 있다”며 “헌법상 병역의무 예외 범위를 종교적 신념 이외로 확대하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개인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A씨의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 신념이 병역법 제88조 1항에서 정의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전 처장은 “종교상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기까지도 20년 이상 걸렸다”고 강조하며 “군대 간 사람들은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이냐”고 반문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반적으로 군대가 폭력조직이라고 설명한다. A씨 역시도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처장은 “군대가 폭력조직이라면 국가도 폭력조직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군대를 유지하는 국가도 폭력조직이라는 것이다.

양심을 판단할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대법원은 A씨가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영을 거부한 점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 전 처장은 “(양심의 진정성은) 법원이 할 얘기는 아니다”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라고 강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독일의 ‘집총거부’로부터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대에서 총을 들지 않고 수행 가능한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이 전 처장은 사법부가 헌법에 근거해 큰 틀에서 사안을 바라보기를 주문했다. 이 전 처장 또한 과거 공무원 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3~5%의 가산점을 주던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해 위헌제청을 했었지만, 최근 1% 정도 가산점을 주도록 관련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누구든지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39조 2항에 근거했다는 설명이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