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가 운임 고공행진과 선복 부족으로 인한 ‘해운대란’이 길어지면서 고심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통보 받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막 먹구름이 걷혀 안도하던 상황에서 생존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25일 기준 전주보다 37.04 오른 3785.4를 기록하며 7주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경제의 빠른 회복 속도에 비해 선복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해운업계가 10년간 침체기를 겪었던 데다 지난 3월 말 발생한 수에즈운하 사고 영향이 이어지면서 주요 항만에서의 적체가 계속되고 있다.
선복 부족과 끝없이 치솟는 운임에 중소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자 HMM, SM상선 등 국내 해운사들은 컨테이너선 외에 다목적선까지 투입하며 애로 해소에 나섰다. 다목적선은 석유화학설비, 발전설비와 같은 초대형 특수 화물 및 중량 화물을 운송하지만 필요에 따라 컨테이너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된 선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임시방편도 넘치는 수요는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해운사 23곳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최대 5600억원의 과징금을 통보 받았다. 2018년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동남아 항로 운임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고 목재 수입업계가 공정위에 신고했던 것에 대한 처분이다. 당시 목재업계는 해운선사와의 대화를 통해 공정위 신고를 취소했지만 공정위는 조사를 이어갔고, 최근 과징금을 통보한 데 이어 한~일, 한~중 항로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대상 업체는 HMM과 SM상선,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 12곳이다.
해운업계는 해운법 29조를 근거로 공정위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해운법 29조는 ‘해운사는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운사들은 근로기준법 등 일반법이 아닌 선원법과 해운법 등 특별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정위의 이 같은 판단이 정부의 해운재건 정책과도 전면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23일 열린 ‘해운대란 극복과 안정적인 해운시장’ 세미나에서 “공정위 주장대로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외국과의 외교마찰 및 국내선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막대한 과징금 부과 등이 예상된다”며 “우리 선사들은 국내외 정부로부터 부과 받은 천문학적인 과징금 납부를 위해 선박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해운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수출입화주들의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제동을 걸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지난 24일 전체회의에서 ‘정기 컨테이너선사의 공동행위에 대한 해운법 적용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경영여건이 열악한 컨테이너선사들의 도산 위기를 고려할 때 공정위의 담합 과징금 부과는 제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0년간 침체기를 겪었던 해운사들이 5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면 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더군다나 지금 같은 호황기에 국외선사에도 과징금을 물리면 어느 선사가 우리나라를 거쳐가겠나. 공정위의 조치가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