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인데, 남편감 찾아요” 인도서 화제된 ‘구혼 광고’

입력 2021-06-26 02:30
BBC 캡처

“짧은 머리에 피어싱을 한 고집 센 페미니스트인데 방귀나 트림을 하지 않고 잘생기고 돈 많은 페미니스트 남자 구해요.”

최근 인도 주요 일간지 짝 찾기 광고란에 실린 이 같은 광고가 트위터에 공유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확인 결과 이 광고는 30번째 생일을 맞은 한 여성의 오빠와 친구가 한 장난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디언 아디티 미탈 트위터 캡처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이 광고문에 제시된 이메일로 접촉해 누가 이런 구혼 광고를 냈는지 추적한 결과 광고를 낸 페미니스트 삭쉬(이하 모두 가명)의 생일을 맞아 오빠 스리잔과 가장 친한 친구인 다미안티가 꾸민 일이었다고 전했다.

스리잔은 “이 광고는 삭쉬의 30번째 생일에 우리가 한 작은 장난”이라고 털어놓으며 “서른 살은 특히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다. 서른 살이 되면 가족과 사회가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라고 등을 떠민다”고 말했다.

스리잔은 인도 북부 12개 도시에 이 광고를 나오게 하려고 약 1만3000루피(약 19만 7730원)를 썼다고 했다. 이어 “삭쉬의 생일 선물이나 축하에 썼을 금액을 광고에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고의 주인공 삭쉬는 자신이 실제로 짧은 머리와 피어싱을 하고 있고, 공공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고집이 센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귀나 트림 이야기는 가족 간에 오가던 농담이었다고 덧붙였다.

스리잔은 삭쉬 생일 전날 밤 종이 두루마리를 하나 선물했는데, 이 두루마리에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가 적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삭쉬는 “처음에 봤을 때 그걸 어디에 쓰라는 건지 전혀 몰랐다”며 “아침에 스리잔이 광고가 든 신문 한 부를 가져다 줘서야 알고는 즐겁게 웃었다. 재밌는 장난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우 리차 차드하 트위터 캡처

작은 장난은 유명인들이 SNS에 광고를 공유하며 빠르게 전파됐다. 여배우 리차 차드하는 지난 15일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라며 자신의 SNS에 광고를 공유했는데, 이후 수십 통의 메일이 광고에 나와 있는 메일 주소로 날아왔다.

삭쉬는 “지금까지 60통이 넘는 메일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이 농담을 재밌다고 생각했다”며 인상적인 메일을 소개했다. 한 남성은 자신이 “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삭쉬의 남자가 돼야 한다고 메일을 썼고, 다른 한 여성은 “저도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광고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용어조차 불결하다고 간주되는 인도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광고를 건방지거나 불쾌한 메시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삭쉬가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면서 돈 많은 신랑감을 찾는 것을 놓고 “남자에게서 돈을 우려내려는 여자(gold digger)”“위선자”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30대라면서 25~28세 남성을 찾는 쿠거(젊은 남자와의 연애나 성관계를 원하는 중년 여성)”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본인 돈은 본인이 버시길”이라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삭쉬의 친구인 다미안티는 인도에서는 결혼의 90%가 중매로 이뤄진다며 “모두가 좋은 짝을 원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며 화를 낸다”고 씁쓸해 했다.

삭쉬는 이 광고가 “많은 이의 자존심을 해친 것 같다”며 “누구나 이런 일들을 큰 목소리로 얘기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키도 크고 날씬하며 예쁜 신부를 찾는다. 돈 많은 척 뻐긴다. 그런데 여자가 그러면 구역질이 난다고 한다. 어떻게 한 여성이 이런 기준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 광고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었고, 난 ‘키 크고, 날씬하고, 예쁜 신부 구함’ 같은 광고를 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명백한 풍자에 화가 난 이들에게 “당신은 매일같이 신문에 나오는 모든 성차별적이고 카스트제에 기반을 둔 ‘신부 구함’ 광고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나”고 반문하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가부장제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