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연예술축제가 2년만에 돌아왔다

입력 2021-06-24 06:00 수정 2021-06-24 06:00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아이다’ 콘서트와 함께 개막했다. 2년만에 열린 페스티벌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해 회당 1만3500명이었던 수용인원을 6000명으로 줄였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공식 페이스북

올해는 오페라 ‘아이다’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르디의 후기 대표작 ‘아이다’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해 위촉된 작품으로 1871년 12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초연됐다.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온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화려한 그랜드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아이다’는 특히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성지로 불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하 아레나 디 베로나)의 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베르디 탄생 100주년이던 1913년 베로나의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아이다’를 올리며 시작된 페스티벌은 제 1·2차 세계대전 때 중단된 것을 빼고는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열리며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지난해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아레나 디 베로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취소됐다. 이탈리아가 지난해 상반기 유럽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이었기 때문에 취소는 불가피했다. 당시 아레나 디 베로나 취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지역 경제로만 한정해도 약 2000만 유로(약 26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19일 개막

코로나19로 지난해 취소됐다가 2년 만에 열린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은 올해 ‘아이다’ 탄생 150주년을 맞아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기념 콘서트를 2회 준비했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공식페이스북

지난 19일 아레나 디 베로나가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한 ‘아이다’ 150주년 기념 콘서트와 함께 2년 만에 돌아왔다. 98회째인 올해는 9월 4일까지 베르디의 ‘아이다’ ‘나부코’ ‘라트라비아타’, 푸치니의 ‘투란도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등 오페라 6편을 37회 공연한다. 한국 출신의 베이스 임채준과 박종민이 ‘아이다’에서 각각 왕과 제사장 역으로 출연한다. 오페라 외에 ‘아이다’ 150주년 기념 콘서트 2회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와 요나스 카우프만의 갈라 공연 등 콘서트가 7회 예정됐다.

코로나19 이전보다 1주일 정도 늦게 시작한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오페라 프로그램은 지난해 예정됐던 것과 같다. 하지만 공연 횟수는 오페라 50회, 콘서트 10회 정도 열던 예년 보다 줄어들었다. 관객 수용인원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회당 1만3500명이었던 데서 이번에 6000명으로 줄었다. 올해 백신 접종을 앞세워 축제를 재개했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 것이 아니므로 조심스럽게 치르고 있다.

매년 7~8월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수많은 공연예술축제의 상황은 아레나 디 베로나와 비슷하다. 대부분 2년 만에 축제 재개를 발표했지만 코로나19 우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해 객석의 50% 이하로 좌석을 판매하기로 했다. 전 세계 바그너리안의 성지인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7월 4일부터 티켓을 판매할 예정인데, 공식 홈페이지에는 전체 좌석(2000석) 가운데 200~1000석 사이에서 결정될 될 것으로 밝히고 있다.

거리두기 적용해 객석 50% 이하 판매

지난해 코로나19로 여름에 열리는 공연예술축제 가운데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대형 축제로는 유일하게 열렸다. 오페라 ‘엘렉트라’ 공연 장면(위)과 거리두기를 적용한 객석 모습. AP·AFP·연합뉴스

지난해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여름에 열리는 공연예술축제가 4~5월 사이에 대부분 취소나 연기를 발표했었다. 대형 축제 가운데 개최된 것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유일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산업의 위상이 워낙 높은 데다 지난해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다. 물론 오스트리아가 축제 개최 여부를 결정해야 했던 지난해 5월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으며, 1.5~2m 거리두기를 적용해 실내 공연을 재개했던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당초 44일간 200편을 선보이려던 계획을 변경해 30일간 60편으로 축소했다. 또한 스태프와 아티스트는 매일 PCR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당시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여기에 오케스트라 편성을 줄이고 공연장 내 객석 거리두기 적용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관람객 7만6500명 가운데 감염 사례 없이 무사히 종료됐다. 당시 마르쿠스 힌터호이저 예술감독이 “살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축제 관계자들의 마음고생은 심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 공연계와 축제들에 희망을 안겨줬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돌아가서 46일 동안 168회의 공연이 계획돼 있다. 객석은 거리두기 없이 100% 판매된다. 다만 관객은 공연장에 입장하기 위해서 유효한 코로나19 음성 테스트 인증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며 공연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영국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객석의 50% 이하로 관객을 받기로 했다. 다만 두 축제와 병행해서 열리는 아비뇽 오프 페스티벌과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하 에든버러 프린지)의 경우 참가 단체들이 워낙 많은데다 공연장보다 체육관, 술집, 학교, 교회 등 다양한 공간에서 열리기 때문에 엄격한 위생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공연단체 입장에서 초청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는 것인 만큼 수익이 중요하기 때문에 거리두기 규칙을 완화해 줄 것을 정부나 지자체에 계속 요청하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는 복병… 온·오프라인 병행하기도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지난 5월부터 공연 단체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지만 수수료 인하에도 불구하고 참여 단체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지 사무국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일찌감치 참가단체 수를 발표했었지만, 올해는 밝히지 않고 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홈페이지

오랫동안 한국 공연예술의 해외 진출 관문이었던 에든버러 프린지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엔 323개 장소에서 3841회의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 참가자는 63개국 5만9000여 명이었으며 전체 관객은 티켓 판매 기준으로 301만 명이나 됐다. 8월 6~30일 열리는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는 지난 5월부터 공연 단체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올해는 25%의 수수료 인하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려는 단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프린지 사무국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자랑스럽게 참가단체 수를 발표했었지만, 올해는 밝히지 않고 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쇼나 매카시 에든버러 프린지 총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2m인 스코틀랜드 공연장 거리두기 규정을 펍과 레스토랑의 1m와 동일하게 해달라고 스코틀랜드 정부에 요청했다”면서 “거리두기 규정을 바꾸면 실내 공연이 좀 더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린지 사무국은 거리두기 규정이 확정된 후인 7월 1일부터 티켓을 판매할 예정이다.

다만 최근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는 다시 기지개를 켜는 공연예술축제들의 복병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유서 깊은 바흐 페스티벌은 코로나19 우려로 지난 11~20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만 공연을 열었다. 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본에서 열리는 베토벤 페스티벌 등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