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화재로 ‘중대재해법’ 주목… 재계선 “책임자 처벌?” 반대

입력 2021-06-24 05:03
중대재해처벌법 그래픽. 국민일보DB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고를 계기로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잇따르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이 강화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향후 법안 적용을 놓고 처벌 대상과 기준 등이 경영계의 주 화두가 될 전망이다.

최근 산업재해 사고가 잇따르면서 내년도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난 9일 광주 재개발정비사업지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치는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소방관 1명이 숨지는 등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조사한 결과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국내 370개 공공기관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가 총 225명에 달하기도 했다.

산재 사고의 주 원인으로 현장관리 부실이 지속적으로 지목돼온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장관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82년부터 시행돼온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는 징역 7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할 시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두되면서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ESG 경영’의 S(사회)가 고객 및 협력업체, 안전, 노동존중 등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CEO스코어가 ‘안전경영책임보고서’ 제출이 의무화된 공공기관 287곳의 지난해 안전관리비는 총 20조5437억원으로 전년 대비 13.5%(2조4458억원) 증가하는 등 안전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경영계에서는 책임자의 과도한 처벌이 영세한 사업장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책임자가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시행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지난 4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건의서를 관계부처에 제출하며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파악할 수 없는 규정과 종사자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 명백한 중대산업재해는 경영책임자가 조사 및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등 관련규정의 시행령 마련을 정부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주요 경제 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법안 보완을 요청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날 “기업에 사고의 책임을 묻는다고 근본적인 원인이 없어지지는 않으며 예방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경영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과도한 처벌은 재개정이나 시행령으로 보완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해당 법이 1년 이상의 징역을 하한형으로 정해둔 것을 상한형으로 바꾸고 경영자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그래픽. 국민일보DB


아직 구체적인 법안 적용 사례가 없는 탓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최근 한국 쿠팡의 이사회 의장, 등기이사 등 직위에서 사임한 데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 쿠팡의 모든 공식 직위에서는 물러났으나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가진 지주사 쿠팡 아이엔씨(Inc.) CEO와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 측은 이천 물류센터 화재에 대해 “현재 총수가 지정이 안 돼 있으므로 총수는 회사로 볼 수 있다”며 “산재 책임은 회사가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과 유사한 경우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산재 책임을 지고 처벌돼야 할 대상이 명목상 대표 위치에 있는 이로 봐야 할지,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로 봐야 할지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라며 “김 의장도 현재 대표이사는 사임한 상태이지만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로 해석하면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애 정신영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