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쌍용자동차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쌍용차 노사는 조기 경영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뼈를 깎는 자구안을 마련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쌍용차의 회생 노력을 지켜보는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시선은 냉소적이기만 해서 아쉬움을 남긴다. 수직 계열화된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완성차 회사 하나가 무너지면 협력사 수백곳이 줄도산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와 지역 경제, 기반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말이다.
쌍용차는 지난 4월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2011년 법정관리 졸업 후 10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선 것이다. 지난해 대주주였던 인도 마힌드라가 갑작스레 철수를 결정하면서 법정관리는 예고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마힌드라가 회사 경영권을 쥐고 있었던 터라 이번 법정관리 돌입의 책임은 쌍용차 노사에만 묻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쌍용차는 만성적인 적자에도 회생에 무게를 두고 선제적인 자구안을 실행해왔다. 모든 직원의 복리후생을 전면 중단하고 임금을 20%씩 깎았다. 임원은 35명에서 16명으로 절반 이상 줄이고, 임원 급여도 총 40%를 깎았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서울 구로와 서부산 등의 주요 정비사업소도 팔아치웠다. 최근엔 직원 대상 2년 무급휴직에 부동산 4개소 추가 매각까지 단행하며 눈물겨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산은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사실상 쌍용차에 ‘정리해고’ 등 인적 구조조정을 담은 자구안을 바라는 분위기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 노사의 노력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그것이 충분한지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한다”며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쌍용차가 2년 만에 회생을 할까, 미지급 임금을 2년 뒤에 지급해야 하는데 투자한 돈이 임금으로 먼저 들어갈 것이란 생각을 먼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이 회장은 쌍용차 문제에 대해 유독 엄격한 잣대와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기업 회생을 위한 관점에서 보면 그의 태도나 발언이 틀렸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쌍용차가 왜 인적 구조조정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지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2009년 쌍용차는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로 아픔을 겪은 회사다. 당시 전체 임직원의 36%인 2600여명을 정리해고하면서 218시간의 부분파업과 616시간의 전면파업이 있었다. 1만4644대의 생산차질이 생겼고 매출손실은 3035억원, 자산손실은 204억원에 달했다.
협력사의 어려움도 가중됐었다. 당시 1차 협력사 32곳 중 5곳은 부도, 25곳은 휴업에 들어갔다. 하위 협력사는 더욱 참담한 현실과 마주했었다. 2차 협력사 399곳 중 9곳이 부도, 10곳은 폐업, 76곳은 휴업을 해야 했다.
쌍용차 노사는 2009년 법정관리 이후 상생을 도모했다. 쌍용차 노조는 그해 개별 기업노조로 전환해 지난 11년간 사측과 임단협에서 무분규 타결을 이뤘다. 무급휴직 등을 담은 이번 자구안도 오롯이 회사의 경영 정상화에만 초점을 맞춘 끝에 수용키로 결정했다. 단체협약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바꾸고 쟁의행위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쌍용차가 과거의 파업 사태를 재현할 수 있는 인적 구조조정을 간단히 여기고 스스로 단행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쌍용차는 현 정부의 뜻에 따라 해고자 복직도 받아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해 마힌드라 측에 쌍용차 해고자의 복직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이 여파로 쌍용차는 그해 71명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10여명의 해고자를 모두 복직시켰다.
정부는 쌍용차의 이번 법정관리와 관련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일단 지켜만 보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고자 복직 문제를 거론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산은은 해고자 복직을 주도했던 정부와 달리 사실상 추가적인 인적 구조조정을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최근 법정관리와 관련해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사람을 잘라서 기업을 정상화하는 것은 틀린 얘기”라고 말했다.
정부와 산은이 보기에 쌍용차가 제시한 자구안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쌍용차 노사는 고통분담을 해가면서 회생 의지를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무조건 자구안이 부족하다고 탓만 할 게 아니라 회생 노력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기업이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 여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쌍용자동차 조기 정상화 범시민운동본부는 23일 시민 4만5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했다. 쌍용차 범시민본부는 “쌍용차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조기 정상화의 필요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을 담아 탄원서를 냈다”며 “쌍용차를 돕고 싶은 평택시민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재판부에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쌍용차의 회생 여부는 단순히 기업 하나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