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두 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 32부(부장판사 윤종섭)가 제시한 새로운 직권남용론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임 전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가 ‘남용할 직권이 없다’는 것이었던 만큼 직권에 대한 해석이 항소심 결과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박연욱) 심리로 열린 임 전 부장판사 결심 공판에서 ‘사법농단 1호 유죄판결’을 여러 번 인용했다. 검찰은 “(해당 판결에 따르면) 법관이 미숙한 재판을 거듭하거나 재판을 현저히 지연시킬 경우 사법행정권자는 재판에 대한 지적 사무를 할 수 있다”며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도 재판의 핵심영역에 대해 어떤 지적도 할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잘못”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 성립의 전제인 직권의 존재를 강조한 셈이다.
검찰의 논리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지난 4월 이들의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재판에 대한 지적 권한이 있다”고 했다. 직권남용죄의 범위를 이전보다 넓게 본 것이다. 임 전 부장판사 1심 재판에서 ‘재판 업무에 대한 직권이 없으므로 직권남용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 것과 대비된다.
임 전 부장판사 측은 검찰 주장에 반발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이런 표현과 판단은 한국의 많은 판사를 폄훼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야 말로 재판 신뢰를 저하시킨다”며 “합의부 재판 취지마저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공방을 벌인 재판 지적 사무는 재판의 독립 문제와 연결된다. 기존 판례에서 재판에 대한 지적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건 헌법 103조 따른 법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재판부는 법관 독립의 원칙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재판에 대한 지적 권한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 해석에 대한 법원 내 평가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의 핵심영역에 관여할 수 있는 직무권한이 있다고 본 건 권한의 범위를 너무 넓힌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고법 부장판사도 “(사법농단 재판에서 직권남용 관련) 판단에 비판이 많아도 법리 적용이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했을 때 적극적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