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두고 노사가 충돌했다. 경영계는 숙박·음식업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의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적용하자고 요구했지만, 노동계는 특정 업종의 노동 가치를 떨어뜨리는 낙인 효과가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지난 30여년간 불발에 그친 업종별 차등 적용은 올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이어갔다. 이번 회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단위와 관련해 월급에 시간급을 병기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시급으로만 결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에는 노사가 한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을 펼쳤다.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1988년에는 업종별 차등 적용 적용이 이뤄졌다. 전 업종을 2개 그룹으로 나눠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했다. 1그룹에는 식료품·섬유·전자기기 등 12개 업종이 들어갔고, 2그룹에는 인쇄출판·산업화학·철강 등 16개 업종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30여년간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은 최저임금위원회 문턱을 못 넘었다. 해외에서는 미국, 캐나다, 일본, 벨기에, 호주 등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경영계는 2017년부터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해왔다. 올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숙박·음식업과 서비스업 등의 임금 지불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으므로 이들 업종의 최저임금 부담을 줄여주자고 주장했다. 사용자 위원 간사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도소매, 숙박·음식, 서비스업과 중소 영세기업, 소상공인은 여전히 어렵고 최저임금의 일률적 인상으로 인해 최저임금 미만율(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의 업종 간 편차도 크다”며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업종별 차등 적용을 강하게 반대했다. 업종마다 저임금 노동자는 존재할 수 있고 최저임금이 낮게 적용되는 업종은 노동 가치가 떨어져 낙인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근로자 위원 간사인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최저임금 사업의 종류별 구분 적용은 노동력 감소와 또 다른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며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 시행 취지에도 역행한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위원인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도 “이미 2018년 고용부 최저임금제도 개선 TF에서도 업종별 차등 적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났다”고 부연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다음 전원회의로 찬반 표결을 미뤘다. 다만 올해도 업종별 차등 적용은 불발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올해 업종별 최저임금을 동일하게 적용하자는 노동계 주장이 관철되면 이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경영계의 속내라는 해석도 나온다. 멀리 내다보고 한발 양보하는 전략이다.
노동계는 제5차 전원회의가 열리는 24일에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을 발표한다. 양대노총은 시급 1만원 이상을 제시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세부 금액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 노동계가 올해 최저임금(8720원)보다 대폭 인상된 금액을 제시하면 경영계는 삭감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