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감다 쓰러진 군인, 30년 지나 순직 인정됐지만…

입력 2021-06-22 12:37 수정 2021-06-22 13:47

군대에서 머리를 감다 사망한 병장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사망 이후 30년 만에 국가가 순직을 넓은 의미로 해석해 유족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사건 당시 순직처리 하지 않은 것을 위법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황순현)는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1976년 8월 제1군단 소속 병장으로 근무하던 중 머리를 감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후송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A씨는 두 달 뒤 갑작스러운 호흡 장애와 혈압 상승으로 결국 숨을 거뒀다.

당시 A씨에게는 외상 등 흔적이 없어 뇌혈관의 급작스러운 장애가 사인으로 추정됐지만, 보호자들이 부검을 거부해 정확한 병명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A씨는 ‘병사’로 처리됐는데, 유족은 A씨가 사망한 지 약 30년 만인 2007년 진정을 제기했다. 육군본부 전사망 심의위원회는 이 진정을 받아들여 2007년 8월 A씨가 군무 수행 중 폐색전증(혈전이 폐동맥을 막아 생기는 질환)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맞다며 A씨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A씨는 폐색전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큰데, 당시 군 의료 환경이나 수준을 고려하면 사망까지 이른 것이 군 복무 중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다는 의학적 소견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다.

이 같은 판단이 나오자 A씨 유족은 “순직 처리가 지연된 동안 유족들이 받지 못한 보훈 혜택 상당의 손해와 사망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소멸시효 도과로 받지 못한 손해가 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4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방부가 사후에 ‘순직’을 넓게 해석했다고 해서 사망 당시 순직 처리하지 않은 결정이 위법이라 볼 수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쓰려져 의식불명 돼 응급후송했다는 내용으로 발병경위서가 작성돼 있을 뿐이어서 A씨가 군무 수행이나 교육 훈련 중에 발병한 것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A씨의 사망 원인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 수행이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하거나 이로 인한 발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A씨의 사망 당시에는 진상규명 불명일 경우 이를 순직으로 인정할 직접적 근거조항이 없었다”면서 “사후에 국방부 내부적으로 ‘순직’을 넓게 해석했다고 해 사망 당시 순직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