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에 자퇴한 아들, 극단적 선택할까 걱정” [인터뷰]

입력 2021-06-24 00:02 수정 2021-06-24 10:15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의 모습을 찍은 사진. 이들은 "손가락으로 브이(V)를 하지 않으면 문을 닫지 않겠다"라고 협박했다. 피해자 측 제공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발생했다. 피해 학생은 욕설과 폭행 심지어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당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가해 학생들에게 ‘출석정지 10일’과 ‘특별교육 3일’을 내리는 데 그쳤다.

가해자들은 출석정지 이후 학교로 돌아왔고, 피해자는 별다른 보호조치 없이 가해자와 같은 교실에서 지내야 했다. 결국 피해 학생은 올해 학교를 떠났다. 피해 학생 부모는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로 인해 학폭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누나 몰카 요구에 구타…학폭위 대신 선도위 열려"

피해자 A군(18)의 아버지는 22일 오후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안 하고 내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학폭 피해 학생과 그 가족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가해 학생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 학폭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하다는 의미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A군은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동급생 5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A군의 용변 보는 모습을 촬영했다. 이들은 ‘손가락으로 V자를 하지 않으면 문을 닫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A군은 하의가 벗겨진 채로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이들은 이유 없이 A군에게 침을 뱉고, 반항하면 주먹으로 때렸다. “너희 엄마 노래방 다니냐” “엄마 없냐” 등 부모님을 들먹이는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또 한밤중에 영상통화를 걸어 ‘누나 속옷을 보여달라’고 협박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 메시지로 욕설을 보냈다.

A군은 올해 학년이 바뀌면서 가해 학생들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가해 학생 일부가 같은 반에 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다.

결국 A군은 개학날인 3월 2일 부모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바로 학교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개최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학폭위가 아닌 선도위원회를 열었고, 가해 학생들에게 출석정지 10일, 특별교육 3일에 징계를 내렸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 폭력은 반드시 학폭위를 소집해야 한다. 하지만 A군이 다닌 고등학교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학교폭력예방법에서 정한 ‘학교’에 포함되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A군은 제대로 된 보호조치도 받지 못했다. A군 부모는 학교 측에 가해자와의 분리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이를 무시했다.

A군 아버지는 “가해 학생들에게 퇴학 처분을 내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고작 출석정지 10일 징계가 나왔다”며 “처음에 학교 측에서 선도위를 연다고 했을 때 학폭위랑 같은 맥락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징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군은 학교와 선생님에게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었고 결국 학교를 떠났다.

A군의 아버지는 혹여나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매일 가슴을 졸인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힘들어하면 아들이 기댈 언덕이 없어질 것 같아 힘든 내색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학교에 못 가는 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현재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며 “다른 학교에도 가해학생들 같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또 학교폭력이 발생할까 봐 두려워 집에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A군 아버지는 “아들은 학폭 피해로 자퇴를 했는데 가해 학생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너무 불합리하다. 피해자가 또 피해를 보는 거다”라며 가해 학생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다.

A군 아버지는 이와 관련해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교폭력 피해학생 학부모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청원은 14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자퇴, 가해자는 학교에…학교폭력예방법 사각지대

A씨는 가해 학생에 대한 퇴학 처분을 요구하고 있지만, 가해 학생들이 이미 징계를 이행해 추가 징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신준하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사무국장은 2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평생교육시설 등은 법적으로 학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평생교육시설에 다니는 학생들도 학생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법으로 너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과 외국교육기관, 국제학교는 학교폭력예방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말하는 ‘학교’란 초중등육법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 특수학교, 외국인학교, 대안학교도 학교폭력예방법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평생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설이라 학교폭력예방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외국교육기관과 국제학교도 초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볼 수 없어 학교폭력예방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신 사무국장은 “평생교육시설에서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폭위가 아닌 자체 규정에 따른 선도위가 열린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신 사무국장은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학교 측에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학교폭력예방법에서 정의하는 학생의 범위를 넓히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 측에서 분리조치 등 피해자 보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측이 피해자 감수성을 늘려야 한다. 피해자의 아픔에 무딘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피해자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학교를 공격한다고 여겨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했다.

신 사무국장은 그러면서 “이런 경우 경찰에 고소하고 법적 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규정대로 했다고 하고, 교육청에서는 관할이 아니라고 해 피해자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A씨 가족은 가해 학생 5명을 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한편 학교 측은 학교 규정에 따라 정당한 징계를 내렸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해당 학교 B교감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징계가 부당하면 되겠느냐”며 “해당 징계는 정당한 절차에서 이뤄진 것이다. 위법도 아니다”라고 했다.

“해당 징계를 내린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B교감은 “취재할 게 그렇게 없느냐. 왜 작년에 있었던 일을 취재하는지 모르겠다”며 “무슨 이득이 있느냐. 지금 학교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언성을 높였다.

징계의 수위가 약하는 지적에 대해선 “절대로 가벼운 처분이 아니다. 출석정지는 옛날에 유급 수준의 징계”라고 했다. 이어 “지금 경찰 조사 중인 사안으로 학교가 학생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