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옥중 사망한 유족에 배상 판결

입력 2021-06-21 16:25

간첩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부장판사 한정석)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사망한 A씨 유족들과 집행유예로 석방됐던 B씨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배상금은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제외한 약 13억8000만원이다.

1970년 1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C씨를 간첩으로 판단해 영장 없이 연행했고, C씨는 일주일 가까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진술서를 5회 작성하고 2회에 걸친 피의자신문을 받았다. A씨와 B씨는 이 사건에 연루돼 1970년 12월 함께 검거됐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A씨와 B씨는 결국 국가보안법위반, 간첩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C씨가 구금된 동안 작성된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유의미한 증거로 인정해 A씨와 B씨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까지 가 형이 확정됐다. 이로써 A씨는 유죄가 확정됐고,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1977년 2월 고문 후유증 등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다만 서울고법은 B씨의 항소에 대해서는 변경된 공소사실을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형을 낮췄다.

A씨 유족들이 제기한 과거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는 2018년 5월에 받아들여졌다. 재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A씨에 대해 고문 등 자백강요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경찰 및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해 8월 B씨도 고문으로 자백을 했다는 사실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았다.

법원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었다며 유족들이 마땅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는 피해자 측의 사정 등과 배상이 지연된 사정까지 함께 참작해야 한다”며 “당시 국가의 불법행위로 본인들과 그들의 배우자·직계비속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국가는 A씨가 이미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상금을 받아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