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드라마가 현실을 못 쫓아온다는 자조 섞인 말이 떠돈다. 원래 드라마는 현실보다 좀 더 자극적인 사건이나 소재를 풀어내는 게 태반이다. 워낙 교묘하게 얼기설기 이야기를 엮다 보니,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설마설마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실로 돌아온다. 인간의 뇌가 드라마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라고 욕했던 가상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뿐 아니라 그런 사건이 내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드라마를 재방송하듯 반복해서 일어나고, 변종 바이러스 마냥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2021년 새해가 밝자마자 코로나19로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긴장의 끈이 한순간 툭하고 끊겼다. 일명 ‘정인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 지난해 10월 13일에 발생한 사건이다. 16개월 된, 너무 어린 아이가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숨졌다. 숨진 사유는 양부모의 폭력을 동반한 지속적인 학대였다. 온 몸은 폭력으로 인해 성한 곳이 없었다. 어른도 참기 힘들 그 고통을 16개월 유아가 견디다 끝내 숨을 거두었다.
정인이를 구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들과 병원 의사는 정인이 몸이 증명하는 아동학대 의심 정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관련 기관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럼에도 또 다시 불행한 결과를 막지 못했다. 성난 민심에 국회는 부랴부랴 일명 ‘정인이법’을 통과시켰다.
‘서현이 사건’을 기억하는가? 2013년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던 아동학대 문제를 대중에게 크게 각인시킨 사건이다. 서현이도 정인이처럼 10월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일명 ‘서현이법’이 제정되었다.
오랫동안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해온 탤런트 김혜자씨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아무리 예쁜 꽃일지라도 폭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아이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너무 어린 정인이의 죽음으로 우리는 다시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수많은 정인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정인이 사건’의 시작뿐 아니라, 그 결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서현이법’ 이후에도 아동학대는 계속되었고, 또 다시 ‘정인이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세상이 조금씩 나아졌다고 자위해야 할까?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법들은 사후 약방문에 지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명의의 약방문일지라도 죽은 후에 받은 처방은 휴지 조각일 뿐이다. 그럴 때마다 법률가로서 필자는 ‘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제발’ 꽃으로도 때리지 말자.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