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박사’ 남기일, “9년차지만…감독으로선 여전히 배우는 중”

입력 2021-06-20 16:44
남기일 감독이 지난 16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K리그 감독 중 남기일(47)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만큼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감독은 드물다. 2013년 2부리그 팀이었던 광주 FC에서 감독 인생 첫 지휘봉을 잡아 바로 다음해 승격시켰다. 성남 FC도 남 감독을 임명한 2018년 바로 1부리그로 승격했다.

‘승격 청부사’의 명성은 제주에서도 이어졌다. 남 감독은 지난해 K리그2에 있던 제주를 맡아 감독 인생 처음으로 우승을 이끌고 팀을 다이렉트 승격시켰다. 맹렬한 기세는 올 시즌 K리그1에서도 이어졌다. ‘승격팀’ 제주는 시즌 초반 4승6무1패를 내달리며 리그 3위에 오르는 ‘돌풍의 팀’으로 우승권 구도를 위협했다.

그렇다고 남 감독의 팀이 결과 중심의 지루한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라인을 올리고 짧은 전방 패스와 강력한 압박을 통해 경기를 풀어 나간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을 떠올리게 하는 남 감독 특유의 공격적인 축구가 팬들의 환호를 불러온 이유다. 지난 16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남 감독은 “볼이 항상 상대 진영에 있어야 찬스가 생긴다”며 “볼을 소유해 상대를 몰아넣고 전방 압박을 계속 시도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 한 달 간 제주의 돌풍엔 제동이 걸렸다. 4월 21일 FC 서울전 승리 이후 8경기 동안 4무 4패로 1승도 챙기지 못했다. 현재 6위(승점 22)지만, FC 서울(승점 17) 등이 두 경기나 덜 치른 걸 생각하면 상위 스플릿도 위태하다.

그 과정에서 남 감독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8일 홈에서 펼쳐진 ‘승격팀 맞대결’에서 수원 FC에만 시즌 2패 째(1대 3 패)를 당한 경기 직후 추가 훈련을 하려다 선수들의 반발로 진행되지 못한 게 도화선이었다. 이후 부진했던 팀 성적과 맞물려 남 감독은 곤욕을 치렀다.

남 감독은 “많은 찬스에도 득점하지 못했고, 교체 선수들이 제 몫을 못해줘 화가 났다. 바로 3일 뒤 경기가 있었다. 경기 끝나고 오후 4시 반밖에 되지 않아, 교체 선수나 출전하지 않은 선수를 대상으로 슈팅 훈련을 하려 했다”며 “감독을 시작할 때부터 유지한 철학은 선수들의 성장이다. 강한 이미지로 비칠 수도 있지만 감독도 근성이 있어야 한다. 쉬면 편하지만, 선수들에 필요하면 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선수들과 먼저 소통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그 전까진 성적이 좋았기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이야기하지 못했다”며 “선수들도 화가 난 상태였을 거다. 훈련에 대한 자초지종 설명 없이 훈련한다고 하니 오해가 생겼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남기일 감독이 지난 16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사실 남 감독은 경희대 체육대학원 시절 ‘프로축구 지도자의 리더십유형에 따른 조직유효성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리더십 전문가’다. 해당 논문에선 ‘카리스마적 지시-통제형 리더십’이 현대사회에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변혁적 리더십’ 등을 프로축구 선수들을 고취시켜 조직 성과 달성에 유리하게 이끄는 대안으로 꼽는다. 변혁적 리더십은 리더의 권한을 이양해 구성원들이 직접 책임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걸 뜻한다. 남 감독이 보여준 리더십 스타일과 차이가 있다.

이론과 실무엔 거리가 있었다. 구단 목표가 천차만별이고, 선수들도 제각각이다. 새로 팀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영입된 선수들을 끌어올리는 것도 단순하지 않다. “안현범이, 이창민이. 주민규가 달라요. 선수에 맞게 얘기를 하고, 맞는 훈련을 하고, 맞는 화를 내야 해요. 저도 사람이고 선수들도 각자 원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오해의 소지도 생기죠. 여전히 어떤 게(리더십이) 맞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상황에 따라 계속 동기부여하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게 리더십이 아닐까요.”

최강희 최용수 감독 등 명장들의 장점을 ‘배우려’하는 것도 그래서다. K리그1에서 족적을 남긴 지도자들은 우승을 위한 철학을 바탕으로 팀 전반을 관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나무보다 숲을 보자는 것이다. 남 감독은 “제가 선수 개개인의 성장에만 집중했다면, 국내 좋은 지도자들은 보다 크게 보고 팀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며 “자신의 색채만 고수한다면 발전할 수 없다. 변하는 축구 흐름에 맞춰서 배워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감독’이기에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 감독은 또 한 번 성장했다. ‘선수의 성장’이라는 핵심은 유지하되, 선수들이 마음껏 의견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앞으로의 과제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하는 선수들이 많지 않아요. 이걸 끄집어내 선수들이 모두 자신이 감독, 주장이란 생각을 갖고 경기하길 원해요. 감독 9년차지만 여전히 걸음마 수준입니다. 새로운 사건으로 또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성장할 겁니다.”

남기일 감독이 지난달 1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 FC와의 K리그1 경기 패배 뒤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제주는 오는 22일부터 경남 밀양에서 하반기를 대비한다. 다음 경기까지 약 한 달. 남 감독은 이 기간 동안 연습경기에 모든 선수들을 내보내 주전-비주전의 격차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또 약점이었던 세트피스 수비시 선수들이 ‘예측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전술적인 보강도 이뤄진다. 이적시장에서 장신 선수 1~2명의 보강도 추한다.

10위, 8위, 12위, 9위. 남 감독이 그동안 시민구단에서 거둔 K리그1 순위다. 기업구단 제주를 맡은 남 감독은 이제 우승을 바라본다. 남 감독은 “5월엔 이틀에 한 번씩 경기하는 일정이라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휴식기를 잘 보내 시즌 초 밝힌 것처럼 제주는 계속 정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