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고 국물요리’ 연구원들 “생일에 미역국 안 먹어요”

입력 2021-06-20 11:55
메가브랜드로 성장한 '비비고 국물요리'를 탄생시킨 CJ제일제당 식품연구원 소속 최수희 연구원(왼쪽)과 김무년 연구원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센터에서 비비고 국물요리 대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4조원대에 이를 만큼 커졌지만 집밥 메뉴를 사서 먹는 게 선뜻 와닿지 않는 때도 있었다. 육개장, 된장찌개, 소고기미역국처럼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간편식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 ‘국물요리’ 부문은 최근 5년 동안 급성장했다. 시장을 선도하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국물요리’는 연간 2000억원대 매출을 내는 메가 브랜드로 커졌다. 지난해 매출 2184억원을 올리고, 1억봉 이상 판매된 비비고 국물요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난 15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국물요리를 탄생의 핵심 멤버인 식품연구소 앰비언트 푸드 그룹의 김무년 연구원과 최수희 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연구원은 세종호텔, JW메리어트호텔 등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 출신이고, 최 연구원은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살균 기술 연구와 상온 HMR 제품 개발을 해 왔다.

“처음 출시하기 전에는 ‘과연 집밥 메뉴를 소비자가 선택할까’ 하는 우려와 의구심이 있었어요. 초기 메뉴인 육개장, 된장찌개 이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정과 설비까지 다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해서 너무 힘든 시간이었는데 의외로 많이 사랑받아서 안도할 수 있었어요.”(최수희 연구원)

CJ제일제당 HMR 제품군 가운데 연매출 20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상품은 햇반, 비비고 만두에 이어 국물요리가 세 번째다. 국물요리 시장 규모는 4000억~5000억원대 정도로 추산되고 CJ제일제당이 4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24개 제품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기본 국물용으로 활용하기 좋은 ‘사골곰탕’이고, 이 제품을 제외하면 ‘육개장’ ‘소고기미역국’ ‘갈비탕’ ‘차돌된장찌개’ ‘차돌 육개장’ ‘설렁탕’ 등이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지난해 비비고 육개장은 3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품 하나를 출시하기까지는 평균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방향성 설정, 연구, 개발, 레시피 구현, 설비 구성, 품질 검토, 제품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다.

“소비자 입맛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해요. 1차로 제품을 만들어도 80인의 소비자가 참여해 맛에 대한 의견을 내면 80% 이상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도록 수정해 나가죠. 비비고 국물요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은 ‘맛’이고 특히 대중의 입맛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김무년 연구원)

대중적이면서 맛있는 맛을 찾는 과정은 험난하다. 때론 연구원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도 일어난다. 두 사람은 비비고 육개장을 개발하던 때를 이야기했다. 셰프들로 구성된 푸드 시너지팀과 연구원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다. ‘육수를 내는 시간’이었다. 셰프들이 깊은 맛을 내는 데 필요하다고 제안한 시간과 생산 효율을 중시하는 연구원들의 적정 시간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연구원들이 아미노산 분석 등을 통한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반전을 맞았다. 깊은 맛을 내기까지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면 최고치가 나온 이후 조리 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해서 맛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됐다.

김 연구원은 “대외비라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 8시간과 9시간은 분명 차이가 났지만, 12시간을 끓이나 15시간을 끓이나 맛의 차이가 미미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오래 끓이면 고기 식감이 부드러워지는 점은 있으나 육수의 깊은 맛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셰프들도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간편식을 소비자가 조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4분 정도다. 하지만 그 제품을 만들기까지 과정은 지난하고, 곳곳에 복병이 놓여 있다. 힘들었던 기억은 훗날 무용담으로 장착되게 마련이다.

두 사람은 초기 제품이자 베스트셀러인 육개장을 개발하던 시기를 떠올렸다. 모든 공정에서 미생물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만들어진 육개장에서 쉰 맛이 났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원료가 변질이 된 것까지는 파악했는데,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몇 주 동안 밤샘 연구 끝에 찾아낸 원인은 ‘대파’였다.

대파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내야 했다. 몇 날 며칠 온종일 대파 냄새를 맡으며 수십박스의 대파를 파헤쳤다. 대파에 파묻혀 온몸에서 파 냄새를 뿜어내는 시간이었다. 김 연구원은 “살면서 그렇게 파 냄새를 많이 맡아본 적이 없었다”면서도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했으니 지금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상온 레토르트 식품을 집에서 갓 만든 메뉴처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20도 이상의 고온에서 압력까지 가해 가열 처리를 하다 보면 원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팔팔 끓은 음식을 레토르트 포장에 그대로 담아내면 나쁜 냄새까지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그건 몹시 곤란한 일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향미를 완전히 망치게 된다. 먹기 직전 조리할 때는 끓으면서 이취(異臭·식품의 나쁜 풍미)가 날아가지만, 레토르트 식품은 휘발의 과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연구원들은 이 과정도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포장을 열었을 때 이를테면 강한 마늘 냄새 같은 게 튀어나와서 맛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취를 없애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Ambient Food 그룹 최수희 연구원(왼쪽)과 김무년 연구원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센터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인기 제품을 선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국물요리 간편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도 물었다. ‘냄비조리가 더 낫다’는 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연구팀은 ‘전자레인지로 조리했을 때 최적화된 조리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에 8개 제품에 대한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는데, 연구팀 입장에서는 이 조사 결과가 뜻밖이었다. 취식 방법에 대한 응답의 97% 정도가 ‘냄비조리’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실제 나트륨 함량보다 간간하게 느끼는 소비자들도 생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최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냄비 조리를 많이 이용한다면 이 점을 감안해서 레시피나 조리법을 개선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원들의 일상은 어떨까.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맛보기’다.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는 것도 물리는 일인데, 연구 과정에서는 맛없는 것도 먹어야 한다.

최 연구원은 “저는 평소에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생일에는 미역국을 안 먹는다(웃음)”고 했다. 국물요리를 매일 적게는 20여차례, 많게는 50여차례씩 먹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두 연구원이 추천하는 제품이 궁금했다. 캠핑을 즐긴다는 김 연구원은 ‘육개장’ ‘소고기장터국’ ‘차돌된장찌개’를 꼽았다. 그는 “캠핑 가서 고기 구워 먹고 남은 고기 넣어서 먹으면 꿀맛”이라고 했다. 생일엔 미역국을 먹지 않는 최 연구원은 ‘소고기미역국’과 ‘차돌육개장’을 꼽았다.

제품 하나를 출시한 뒤에도 연구·개발은 계속된다. 최 연구원은 “맛 품질을 매일 검증해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건 보람찬 일”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