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다 끝내 순직한 고(故) 김동식 119구조대 구조대장의 빈소가 마련됐다. 김 대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동료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도 애도가 쏟아졌다.
경기도 하남 마루공원 장례식장에는 19일 오후 김 대장의 빈소가 마련됐다. 영정 안엔 소방관 정복을 입은 김 대장의 모습이 담겼고 단상엔 김 대장의 소방모와 그가 생전 현장에서 입던 기동복이 곱게 개어 놓여 있다. 영정 양옆엔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의 조화가 놓여 있다. 복도엔 김오수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등 정치권 인사들의 조화와 근조기가 줄을 이었다.
앞서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10시32분 화재 당일 건물 내부에서 실종된 김 대장을 찾는 수색팀 15명을 투입해 10시49분에 지하 2층 입구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김 대장의 유해를 발견했다. 수색팀은 현장을 정리한 뒤 오전 11시32분부터 유해 수습을 시작해 낮 12시12분에 완료했다. 김 대장이 실종된 지 48시간 만이다. 경찰은 유해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유족 동의를 받아 20일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할 예정이다.
오열한 어머니…'근조' 리본 단 동료들
이날 차려진 빈소엔 상복을 입은 김 대장의 아내와 두 자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먼저 간 아들 소식에 자리에 주저앉은 김 대장의 어머니는 “아이고 내 새끼…너 없이 어떻게 살아… 나도 데리고 가거라”라며 오열했다. 동료 소방관들을 붙잡고는 “다른 사람 살리려다 당신네가 죽으면 누구 손해요”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 대장의 어머니는 어린 손자·손녀를 보며 “아버지를 일찍 잃어 어떡하냐”며 또다시 흐느꼈다.
김 대장과 함께 근무했던 경기 광주소방서 소속 소방관 20여명이 가슴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달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한 동료는 “화재가 발생하기 하루 전 열린 소방기술 경연대회에서 김 대장이 이끄는 팀이 입상해 광주소방서가 축제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황망하다”며 “다부진 모습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봐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던 동료가 그립다”고 했다.
1995년 초임 시절부터 김 대장과 고락을 함께한 같은 소방서 조우형 119구급대장(소방위)은 김 대장이 퉁명스러워 보이면서도 여리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출동은 공교롭게도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이었는데, 처음 보는 시신에 조 대장이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김 대장은 “이런 현장 많이 보게 될 거니 침착하게 현장 활동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김 대장은 “오늘은 현장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대기하라”며 첫 출동인 조 대장을 배려해줬고, 현장 수습을 마친 뒤에도 현장 대응 요령 등을 설명하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고 한다. 조 대장은 “선배로서 퉁명스럽게 이야기해서 다가가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맡은 바 임무는 묵묵히 해내고 걱정거리에 대한 내색 없이 본인이 짊어지고 해결하는 사람이었다”며 “처음 사수로 만나 현장에 대해서 다 가르쳐 준 분”이라고 김 대장을 추억했다.
“위험한 현장에서도 2차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해 늘 공격적으로 화재 진압을 하던 선배였다”고 한 그는 “구조대장 역할을 맡아 대원들과 가장 위험한 곳에 투입되면서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오던 분이었는데 그게 이런 참변으로 이어졌다”며 울먹였다.
쿠팡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는 빈소를 찾아 “고인의 숭고한 헌신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유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모든 지원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문 자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른 자리에서 말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해 쿠팡 측의 대응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뒤이어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 전 의장도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애도했다. 9일 오후 6시30분쯤 빈소를 찾은 김 전 의장은 고인을 애도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온 국민이 기다렸는데 마음 아프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 대장 순직 소식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방대원들의 안전부터 먼저 챙기며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벌인 구조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기다렸는데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아울러 박 대변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분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정부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포함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김상호 하남시장이 조문했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의원, 비서실장인 김영호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김부겸 총리 "용기와 헌신 기억하겠다"
조문을 마친 김 총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대장님의) 용기와 헌신을 반드시 기억하고 전하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27년을 화재현장에서 늘 끝까지 동료를 보살피고 책임져 끝판 대장이라고 불리던 분”이라고 한 김 총리는 “기적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나 결국 또 한 분의 소방관을 떠나보내게 됐다. 비통하고 애통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어 “김 대장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조문 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리 사회를 지켜낸 영웅,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김 대장이 남겨준 숙제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죄송하다는, 더 안전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눈물 앞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며 “홀로 사투를 벌였을 고인을 생각하면 목 안이 뜨끔하다”고 적었다.
그는 “대형 화재의 가장 큰 원인은 건축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화재에 매우 취약한 우레탄폼과 샌드위치 패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이라며 “화재 안전대책 법안이 아직도 국회 행안위에서 심사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장처럼 앞서간 이들의 죽음에서 배워야 한다. 정치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이토록 죄스러운 일이 반복되는 걸 막아야겠다”고 강조했다.
김진욱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화재현장에서 순직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인에게 예를 표했다.
김 대변인은 “6월 국회에서 (화재 안전대책의 현실화를 위한)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서 더 이상 후진국형 화재 사고로 인해 국민과 소방관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여야가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이번 화재 사고와 관련하여 순직하신 구조대장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소방관의 희생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물류창고 화재 설비 기준 고민하겠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야권에서도 추모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대장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한 뒤 “스프링클러 등 초기 진화설비가 기준에 맞게 동작했는지 등이 밝혀지면, 가연성 포장재가 많고 진화를 위한 소방 장비가 진입하기 어려운 물류창고 등에 대해 새로운 화재 설비 기준이 필요한지를 고민해보겠다”고 약속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유가족분들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꼭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국민의 바람이 무너져 비통하고 슬프다”고 밝혔다. 황보 대변인은 “화재를 미연에 방지했다면 대장님이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철저한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도 “화마와 사투를 벌이며 동료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김 소방경의 사명감을 시민들은 가슴 깊이 기억할 것”이라며 “정의당은 김 소방경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소방관들의 노동환경을 두루 살피고 화재사건의 진상규명과 사후대책 마련에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 역시 “인명 수색을 위해 화마의 현장에 투신한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정부는 돌아가신 김 대장님에 대한 장례를 최대한의 예우로 모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 대장의 빈소는 20일까지 이틀간 운영된다. 장례는 21일 오전 9시30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