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수술실 CCTV 우려 잇따라… “환자·근로자 인권 침해”

입력 2021-06-18 14:13 수정 2021-06-18 14:19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달 27일 경찰 압수수색을 받은 인천의 한 척추 전문병원 전경. 해당 병원은 소속 행정직원들이 수술 등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연합뉴스

수술실 내 CCTV 설치와 관련해 의료계 단체들이 연달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대리 수술 등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나 의료사고를 줄이겠다는 원취지를 넘어 의사와 환자에게 모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논리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18일 성명문을 내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료 행위의 왜곡을 불러오며 환자와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CCTV 설치로 환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고, 수술실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의 인권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효성도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수술복과 가운, 모자, 마스크로 전신 대부분을 가린 의료진의 신원을 CCTV로 정확히 분간해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마음만 먹으면 CCTV가 있더라도 편법으로 일탈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같은 날 CCTV 설치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전공의들의 수술 참여를 제한해 숙련도 저하로 이어질 것이며 CCTV 영상이 유출될 경우 환자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전협은 “2014년에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촬영된 나체 사진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며 “향후 수술실 영상이 어떤 방식으로 악용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리수술이나 의료사고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원취지를 달성할 대안도 제시했다. ‘수술실 장비 블랙박스’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고안해낸 수술실 장비 블랙박스는 의료진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포함해 수술 기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환자의 생체신호는 어떤지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의사 단체들의 잇따른 우려는 CCTV 설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논의 재개를 앞두고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23일 해당 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전날 국회에 법안 추진을 보류하고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