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소원은 외국인등록증”…난민 인정 못 받은 아이의 꿈

입력 2021-06-17 18:18
공익법센터 어필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한 난민 가정의 2세 아이들이 경기도의 한 주택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된 A군은 한국인이면서 이방인이다. A군 아버지는 10년 넘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전을 벌였지만 끝내 패소해 미등록 체류 상태로 한국에서 생활 중이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여기는 A군은 모바일 게임조차 또래 친구들과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을 깨닫는다. 외국인등록증이 없다 보니 신분확인을 거칠 수 없어 게임 사이트에 가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A군이 맞닥뜨릴 미래가 게임 사이트 가입 불가능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성년자는 국내 체류 지위가 없더라도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 허가를 받는 등 지역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미등록 체류 아동 일부에게 체류자격을 주겠다고 밝힌 터라 A군도 곧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영주자격이나 국적을 취득할 수는 없어 대학교를 그만두면 곧바로 체류자격을 상실한다. 한국에선 직장조차 구할 수 없는 ‘자격 없는 이방인’ 신세가 된다. 이 때문에 A군의 유일한 소원은 외국인등록증을 갖는 것이다.

난민을 돕기 위해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세계난민의날(6월 20일)을 사흘 앞둔 17일 “A군은 성인이 되면 한국인으로서 자립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난민에 관대하지 않다. 올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외국인 비율이 채 1%도 되지 않는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기준 4704건의 신청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비율은 단 0.3%(14건)에 불과하다. 이는 난민심사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후 역대 최저다.

난민이 인정된 경우는 변호인 조력을 받아 소송 끝에 난민 지위를 받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나이지리아 출신 B씨는 2018년 한국으로 들어와 난민신청을 했고, 2년 7개월간의 법정 다툼을 벌이고 나서야 겨우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그보족 출신인 B씨는 한국에서 미등록 체류 상태로 나이지리아 비아프라분리독립단체(IPOB) 한국지부 리더로 활동하다 어필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신청을 했다.

처음 당국은 B씨가 단순히 미등록 체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거짓 난민 신청자로 판단했다. B씨는 이의신청, 1심 재판, 고등법원 재판 단계까지 장기적인 소송전을 이어갔고, 결국 친동생이 나이지리아에서 경찰에 끌려간 뒤 독극물 등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이 증명된 후에야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국내에서 난민 인정 건수가 적은 이유로 난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프리카 내에서 난민 신청자가 정치적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주장하면 ‘아프리카에는 위조문서가 많다’며 진위 여부를 증명하라고 압박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난민 입장에선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판결문이 진짜임을 인정해달라고 자국에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민을 ‘테러리스트’로 보는 이른바 ‘난민혐오’ 정서도 장벽으로 꼽힌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2018년 제주도에 예멘인이 집단으로 난민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난민혐오 정서가 짙어졌다. 당시 국내에선 “예멘 난민들이 한국 여성을 강간할 것이다” “한국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짜로 난민인 척 한다” “테러를 하러 몰래 왔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확산됐고,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강화됐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난민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도피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는 “난민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테러를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본다면 난민이 살아갈 곳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