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보험계약자, 수익자를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먼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17일 DB손해보험이 이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단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이 사건처럼 보험사의 선제적 채무부존재 소송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씨의 동생은 2016년 9월 DB손해보험과 상해사고 사망시 2억여원을 지급받는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약 한 달 뒤 리프트 추락사고를 당해 숨졌다. 이에 형 이씨는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동생 이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업무 분야를 사무로 고지했으나 실제로는 플라스틱 도장 업무를 수행했다”며 ‘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소송을 냈다.
앞선 하급심에서는 “이번 사고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상해 사망에 해당한다”며 보험금 2억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뤄졌다. 동생 이씨가 ‘취급하는 업무’란에 회사명과 그 대표임을 적었다는 점, 도장 업무를 하기도 했지만 거래처 관리 등 사무 업무도 담당했던 점 등이 고려된 판단이었다. 이에 보험사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보험사가 수익자나 계약자를 상대로 먼저 소송을 거는 것이 적법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보험사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험계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상 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해 다툼이 있는 경우 그로 인한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보험회사가 먼저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기택·김선수·노정희 대법관은 “확인의 이익은 국가적·공익적 측면에서 소송 남발을 억제하고 형평에 반하는 소송제도의 이용을 통제하는 원리”라며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를 즉시 확정할 이익이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통해 종래의 재판 실무가 적법하다는 점을 재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보험사가 먼저 보험금 채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내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려온 법원의 판단이 유지됐다는 의미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