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느리고 집중 못하는 아이

입력 2021-06-17 13:42

초등학교 5학년 P는 행동이 느리고 집중을 못해 부모는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과제를 할 때는 물론이고 아침 등교 준비를 할 때, 외출 준비를 할 때 그렇다. 참다 못한 엄마는 소리를 버럭 지르게 되고 야단과 잔소리가 길어진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이가 5학년이 되어서는 달라져 대들기 시작하면서 집안이 ‘전쟁터’처럼 변하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는 부모의 삶의 자세가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크게 2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문제 해결 모드와 노을 모드라고 한다. 첫 번째 문제 해결 모드란 문제가 다가올 때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미래의 문제를 예측하고 계획하고 통제하는 식으로 생각을 이용해 대응하는 식이다. 이런 사고 활동을 통해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왔으므로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방식이고 이렇게 대응하도록 우리는 교육 받아 왔다.

두 번째 노을 모드란 석양이 질 무렵의 노을을 바라볼 때,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할 때의 태도로 현재 보이고 들리는 감각에 집중하고, 느낌을 바라보며,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태도이다.

두 가지 방식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되어야 함에도 우리는 교육 받아와 익숙해진 문제 해결 모드만을 반사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응급한 상황이나 위기에서는 이런 문제 해결 모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생활 모두를 이런 방식으로만 살아간다면 영혼이 피폐해지고, 에너지가 고갈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을 모드가 필요한 거다.

자동 반사적 반응을 잠시 멈추고 현재, 지금의 감각과 느낌에 집중해 보자. 노을을 바라보는 것처럼, 현재 느껴지는 감각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거다. 이렇게 잠시 고요하게 현재, 이곳에 머물게 되면, 내 행동의 의도가 무엇인지 다 떠오르게 된다. 아이와 논쟁하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아이와 악다구니 하며, 싸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그걸 원하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잠시만 ‘저 녀석이 나를 무시해?’ ‘저런 행동을 하다가는 앞으로 뭐가 될지 걱정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잠시 멈추어 노을 모드로 모드전환을 시도해 보자.

스스로에게 ‘멈춰!’ 지시하고 일단 숨을 관찰해 보자. 가빠지는 호흡을 바라보자. 나의 몸에서 열이 끓어오르고 얼굴이 화끈거려 오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굳어지는지 관찰하자.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고, 내 눈 앞에 무엇이 보이는지 5개만 헤아려 보자. 창밖의 찻소리, 텔레비전 소리, 가빠오는 아이 숨소리, 커튼, 소파 등등과 일그러진 표정의 아이 얼굴 등을 고요히 감각으로 느껴보자. 그리고 ‘내 행동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려 보자. 아이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려고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나의 의도와 부합하는 행동을 선택하자.

우리의 행동도 세분화해서 관찰해 보면 순간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숟가락을 잡을 지 말지, 밥을 입속으로 넣을지 말지 등등,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물며, 아이에게 주는 가르침인데 잠시 머물며 분주하고, 혼란스런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선택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그동안 길들여진 문제해결 모드로 부터의 전환은 다소의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런 연습을 아이와 함께 하면 더 좋다. 오늘 저녁 바로 시작해보자. 우선 거울을 보면 집중해서 양치질을 해보자. 자신의 감각, 느낌을 관찰하고 또 주의를 옮겨서 귀를 열고 눈을 열고, 피부의 감각을 열어 주변을 관찰하자. 그리고 양치를 시작하기 전, 치약을 묻히기 전 양치를 하는 중, 순간 순간 자신의 행동을 그때그때 선택하는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멈추어 집중을 유지하고 전환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다른 잡념과 생각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어 집중력도 좋아지며, 감각과 느낌을 깨울 수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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