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을 내놔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나왔던 ‘1차 소송’에선 한 사건을 두고도 본안소송과 소송비용 추심, 강제집행과 관련해 세 번의 엇갈린 결론이 나왔다. 판결문과 결정문을 보면 결국 판단은 국가면제 원칙의 적용 여부에 따라 갈린다. 해외에서도 논쟁이 심했던 만큼 해석이 다른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서울중앙지법에서만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해 네 번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1월 “위안부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1차 소송 판결이 나온 데 이어 3월엔 “이 사건 소송 비용을 일본에 강제 집행해 받을 수 없다”는 결정이 이뤄졌다. 4월에는 “국가면제 원칙에 예외를 둘 수 없어 일본에 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2차 소송 결과가 나왔다. 이달에는 “1차 소송 판결의 강제집행은 적법하니 일본의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결정이 추가됐다.
위안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1월 판결과 6월 결정은 국가면제 적용에 예외를 둬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국가면제는 한 나라의 주권행위를 다른 나라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1월 판결을 내린 민사 34부(당시 김정곤 부장판사)와 6월 결정을 내린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중대한 인권 침해에서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남 판사는 유럽인권재판소의 고문 관련 판례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독일·이탈리아 판례를 언급했다. 두 판례 모두 고문과 중대 인권 침해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했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았다는 취지다. 남 판사는 “유럽인권재판소 판례의 경우 전체 재판관 17명 중 8명이 반대 의견을 냈었다”며 “ICJ에서도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인정되면 안 된다고 본 재판관이 있었다”고 했다.
반면 3월 결정과 4월 판결은 국가면제 적용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취지는 다르지만 두 결정문·판결문에도 ICJ의 독일·이탈리아 판례가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독일은 ICJ에 제소했고, ICJ는 국가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4월 판결문에는 “ICJ에서도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의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을 배척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법조계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탈리아 대법원처럼 국내 사법부로서 할 수 있는 법리적 판단을 내리면 된다는 의견과 ICJ 판결에 비춰볼 때 국제법을 무시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 부딪친다.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에서도 찬반 논쟁이 많았던 만큼 하급심 법원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서도 “국가면제가 고정되어 불변하는 국제법 원칙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