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가 방향 틀면, 밑에서는…” 조직개편안 확정 앞둔 檢

입력 2021-06-16 18:28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던 도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전날 심야에 김오수 검찰총장을 만난 박 장관은 "직제개편안에 대한 견해 차이를 상당히 좁혔다"고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김 총장이 같은 날 오후 김부겸 국무총리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정상을 향하는 선두가 방향을 1도만 옆으로 틀어도, 맨 뒤에서 따라가는 이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높은 분들은 밑바닥이 얼마나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 주셨으면 한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16일 거듭돼온 검찰 업무환경의 변화를 등산 행렬에 비유했다. 지난해부터 검찰은 특수부 등 직접수사 부서의 축소,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신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및 공소청 신설 시도 등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이제는 상반기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사법통제’ ‘수사협력’ 전담부서가 생기고 반부패·강력범죄 등 수사 기능이 통합되며, 형사부의 직접수사 개시 요건은 까다로워지는 변화가 현재까지 예정돼 있다.

잦은 제도개선으로 변한 것은 업무환경 뿐만이 아니다. 검찰 구성원들은 “내부의 분위기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예년 같으면 변화를 앞두고 벌어졌을 검찰 내부망에서의 활발한 토론도 이번에는 없었다. 한 현직 검사는 “뭔가를 말한다 해도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의 제도개선 방안이나 국회의 입법에 대해 의견을 만들고 취합하는 일은 그간 자주 반복됐다. 자구 하나까지 공들여 만든 일선의 반대 의견이 이후 어떻게 쓰였는지는 잘 모른다고, 검사들은 말했다.

제도 정착기에 시도되는 제도개선이라는 점은 행렬 맨 끝의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시행된 지 6개월도 흐르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겪는 실무상 혼란과 시행착오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사들은 직접수사 개시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범죄 혐의가 발견되거나 의심되는 경우를 혼란스러워했다. 사건을 경찰에 알려 수사토록 해야 하지만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명확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사법경찰과 협력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한 검사는 “‘다른 기관에 고발해야 하느냐’고 서로 묻기도 하고, 보고할 곳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검사들은 인권친화와 효율의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으로 추진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가 대검에 방안을 전달한 뒤 일선 의견수렴에 나서는 게 아니라, 애초 구성원의 의사를 먼저 묻는 방식이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던져 놓고 ‘받아라’ 하는 식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과거에는 검사들이 평소 문제라고 말하던 내용들이 개선 대상으로 제시됐다면, 최근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내용들이 개선 대상으로 말해지고 있다”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에둘러 비판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내용’으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내용은 법무부 장관의 지청 형사부 수사개시 승인 제도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장관 승인’이 법적 문제를 낳을 수 있으며, 사실상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적 의견이 많았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을 훼손시킨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총장과 장관이 이견을 보인 조직개편안은 곧 확정될 전망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검찰의 일부 반대 의견에 대해 “수용할 만한 건 하고, 그렇지 않은 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번 주 중 김 총장을 만나 조직개편 협의를 최종 타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총장은 박 장관과의 만남 일정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 부분은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