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참사, 재개발 조합장과 조직폭력배 ‘합작품’

입력 2021-06-16 16:06 수정 2021-06-16 16:20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는 비리 복마전으로 꼽히는 재개발 조합과 ‘검은돈’을 좇는 조직폭력배가 엮여 빚어낸 참사로 드러나고 있다. 재개발 조합장 선거부터 철거업체 선정까지 이어진 이들의 비뚤어진 관행적 연결고리가 후진국형 건물 붕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16일 학동4구역 재개발 조합장 조 모(73) 씨와 미국으로 도피한 개발대행사 M사의 실제 사주 문 모(61) 씨가 재개발 사업 현장의 하도급 업체 선정을 주도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이들의 유착관계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국가수사본부 전문 수사관 등 10여 명의 수사진을 보내 서울 용산 현대산업개발(HDC)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건물 철거 관련 계약서 등 관련 서류와 컴퓨터 파일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학동 4구역 시공사 HDC 건설본부와 철거 업체, 현장 관계자들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업무 협조를 해왔는지를 규명해 붕괴 참사 책임을 가린다는 방침이다.

경찰 조사결과 지난 2018년 재개발 조합과 철거·시공 도급계약을 체결한 HDC는 일반건축물 철거를 한솔기업에 맡겼고 한솔 측이 지난해 2월 다시 백솔건설과 아산산업개발 등 10여 개의 광주지역 영세업체에 재하청을 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은 HDC 대표이사가 사고 직후 “한솔 외에 재하청을 준 적은 없다”고 밝혔으나 현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굴착기 기사 조 모(47) 씨가 “현대산업개발이 지시한 공법대로 철거작업을 했다“고 진술한 점을 중시하고 있다. 백솔건설 대표인 조 씨와 현장관리소장 강 모(28·여) 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들은 17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경찰은 이에 따라 HDC와 한솔에 이어 백솔, 아산 등으로 다시 이어진 하도급 과정에 재개발 조합장 조 씨와 지난 13일 미국으로 도피한 조직폭력배 출신의 문씨가 두루 관여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5일 광주시청과 동구청 등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철거업체, 감리업체 등 10여 곳의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관련 자료 분석을 통한 증거확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미 아파트 분양을 마친 학동3구역 조합장을 먼저 역임했던 조씨가 조직폭력배 출신인 문 씨의 비호로 학동4구역 조합장 자리까지 잇달아 맡는 등 유착 관계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문씨가 학동 4구역 재개발 조합의 도시정비 대행업체 M사 ‘고문’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문 씨는 재개발 조합장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조씨가 당선되도록 경호·경비를 서는 등 적극적으로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문 씨는 2019년 12월 5월 단체인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으로 선출됐으나 회원들 사이에 폭력조직인 일명 ‘신양 OB 파’ 행동대장 출신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들끓고 지난 12일 임시총회에서 해임 안건이 의결되자 자진 사퇴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학동 4구역에 앞서 학동3구역 재개발부터 각종 이권에 개입해온 문 씨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데 불안을 느껴 미국 시카고로 도피한 것“이라며 “인터폴과 공조해 여권 무효화 조치를 하는 등 강제송환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