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열풍’ 타고 ‘첫’ 여성 사외이사 바람…‘구색 맞추기’ 지적도

입력 2021-06-15 17:08
여성채용 그래픽. 국민일보DB


올 들어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인 가운데 내년도 자본시장법 개정까지 앞두고 기업들이 여성 사외이사 모집에 급하게 나서는 분위기다. 다만 여전히 여성 사외이사 비율이 적으며 인력 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15일 재계 등에 따르면 SK, LG, 현대차그룹, 한화 등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 SK그룹의 지주사인 SK㈜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 사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지주회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등 LG그룹의 상장 계열사들도 올해 초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올 들어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기아,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에서 첫 여성 사외이사가 선임됐다. ㈜한화를 비롯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계열사도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여성이 기업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는 경우도 올해 처음으로 나타났다. 효성그룹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효성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앞서 KT가 2006년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으나 당시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민간기업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여성이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 사이에 ‘ESG 열풍’이 불며 ESG 경영의 사회(S) 및 지배구조(G) 부문과 연관된 성 평등 또한 함께 부각되는 분위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4일 ESG위원회를 신설하며 신미남 전 케이옥션 대표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여성이 ESG위원장을 맡은 것은 국내 30대 그룹 중 처음이다.

다만 기업들이 이처럼 일제히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나서는 것은 내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앞두고 ‘구색 맞추기’로 급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8월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필수적으로 선임해야 하지만 사외이사로 누구를 모셔올 수 있을지 ‘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많은 국내 기업들이 올해 초부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급하게 여성 사외이사를 찾느라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실질적인 여성 구성비율이 아직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30대 그룹 ESG 위원회 구성·운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그룹 중 이사회 내 ESG위원회가 설치된 16개 그룹 51개사의 위원장 및 위원 207명 중 남성은 181명(87.4%)인 반면 여성은 26명(12.6%)에 불과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