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1심이 각하 판단을 내린 것에 반발하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국민 존엄은 무시하는 이곳이 일본 법원인가”라며 1심 재판부의 판결을 거듭 규탄했다.
14일 오전 11시쯤 일제강제노역피해자정의구현전국연합회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측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강제노역 피해자 고(故)이기택씨의 아들인 이철권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 스무살의 나이에 일본 탄광으로 강제 노역을 당해 평생 다리를 저는 장해를 겪었다며 “아버지의 마지막 한을 풀어드리려고 수십년을 준비했는데 김양호 판사에 의해 저질러진 폭거에 또 절망했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이어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반역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부인하는 반헌법, 정치 논리에 국민의 존엄은 무시하는 이곳이 일본 법원인가, 대한민국 법원인가”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 강길 변호사는 이날 강제노역 피해자 2명과 유족 73명을 대리에 총 75명이 항소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1심 재판 결과를 수긍할 수 없어서 항소했다”며 “피해자들이 강제노역의 심각한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은 회피하지 말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회 장덕환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이 판례로 굳어져가고 있는 상황이고, 불과 2~3년밖에 안 됐는데도 (1심 재판부가)이러한 판결을 했다는 점은 전 유족과 국민에게 분노를 안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이 (손배소를 각하한 건) 상급심인 대법원의 판결 자체를 들이받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 항소에서는 반드시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도 “(항소심이) 기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이 1심 판결을 변경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이 사건 심리를 담당한 재판부를 규탄하며 재판장인 김양호 부장판사 탄핵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일 김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강제노역 피해자 및 유족 84명이 일본제철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까지는 아니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국가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를 제기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또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질 경우 일본과의 국제관계에 미칠 여파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2018년 10월 30일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과는 상반돼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김 부장사를 탄핵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만명이 넘게 동의 의사를 표한 상태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