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90여 시간을 일하던 40대 택배기사가 과로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택배노조는 14일 “국가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택배기사 과로사의 주범으로 꼽히는 물품 분류작업을 개별 기사들에게 떠넘기지 않기로 한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기구’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서울여의도포스트타워 1층을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롯데택배 경기도 성남 운중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임모(47)씨는 전날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임씨의 아내는 오전 4시30분쯤 잠을 자던 임씨가 자꾸 몸을 비틀고 “왜 그러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오전 7시쯤 수술을 받았지만 뇌출혈이 한 곳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해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의사 진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씨의 동료 김종일씨는 국민일보에 “(임씨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농담을 주고 받던 동생이 그렇게 됐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너졌다. 중학생이 된 쌍둥이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이었던 친구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씨는 올해 초 택배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으로 노조 가입 전에는 하루 15.5시간, 주 평균 93시간 노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가입 이후에도 주 평균 80시간이 넘는 초장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 6일을 근무하면서 하루 2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날도 잦았다고 한다.
동료 김씨는 이날 택배노조가 포스트타워에서 개최한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저 친구를 저렇게 놔두면 죽는다고 대리점에 몇 번이나 물량 조절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장은 들은 척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은 또 누가 쓰러질지, 내가 쓰러질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있다”고 말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임씨가 주 평균 80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차량유지관리비 등 각종 경비를 제외하면 한달 수입은 35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구조”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택배노조 소속 조합원 120여명은 “우정사업본부가 국가 공공기관임에도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여의도우체국 청사가 있는 여의도포스트타워를 기습 점거했다.
진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위탁배달원들이 연말까지 개인별 분류를 하도록 하고 그전까지 택배기사들이 물품 분류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지난 10일 지금까지 분류 비용을 택배기사들이 받는 수수료에 포함해 지급해왔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 노동자들이 매달 받아보는 수수료 지급 명세서 그 어디에도 분류 비용 내역은 찾아볼 수 없는데도 우정사업본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본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대국민 사기극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날 회견에 대해 ‘불법 집회’라며 수차례에 걸쳐 택배노조에 해산명령을 내리면서 양측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흥분한 조합원들이 경찰을 향해 달려들면서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