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가 각하 판결을 받아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4일 항소했다.
일제 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최근 나온 1심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원고 85명 중 75명이 우선 항소했고 나머지는 추후 항소장을 내기로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이기택씨의 아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위로받고 보상받아 마땅한 아버지의 생고생이 왜곡되고 부정되는 슬픈 현실에 절망하지만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잘못이) 바로 잡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씨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에 끌려가 탄광에서 4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이후 폐렴 등을 앓다가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고 아들은 전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를 대리한 강길 변호사는 “1심 재판 결과를 수긍할 수 없어서 항소했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강제 징용과 같은 국제법 질서에 어긋나는 인권유린에 대해 일본이 반성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그 위에서 양국 관계가 재정립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런 관점에서 나온 기존 대법원 판결과 어긋나는 1심 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상급심으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소송을 끝내는 결정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라 파장이 컸다.
법조계에선 1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이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이를 뒤집는 판단을 내리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소수의견을 따른 1심 판결이 사법부에 법리적 고민을 안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강 변호사는 지난 7일 각하 선고 직후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야 할 사안”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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