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사 생전 진술조서 들여다보니…동료들 방관 정황

입력 2021-06-14 08:47 수정 2021-06-14 10:13

성추행을 당한 뒤 회유와 압박 등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중사의 피해자 진술조서가 공개됐다. 공개된 조서엔 성추행이 벌어진 차 안에 함께 타고 있던 동료들이 가해자의 범죄를 방관한 정황이 담겨 충격을 주고 있다.

JTBC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중사가 남긴 피해자 진술조서를 입수했다며 관련 내용을 지난 13일 공개했다. 공개된 조서엔 지난 3월 2일 밤 이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사건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회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는 이 중사와 가해자 장모 중사, 상관 노모 상사가 나란히 탔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노 상사는 차에서 내리면서 장 중사에게 “한 명은 앞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말했지만, 장 중사는 반말로 거부했다.

그 때문에 뒷좌석에 장 중사와 둘만 앉게 됐다. 노 상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이 둘을 떼어 놓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실제 노 상사가 내리기 전에도 장 중사의 성추행이 시작됐고 이 중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같이 타고 있던 노 상사와 지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고도 진술했다.

노 상사가 내린 뒤 장 중사는 운전 중인 A하사에게 두 차례에 걸쳐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했고 이후 본격적인 추행이 벌어졌다. 이는 우발적 추행이 아닌 계획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장 중사는 추행하는 동안 많이 취했으니 정신 차리라는 취지의 말을 10번 정도 반복했다. 이 중사는 이 발언이 운전 중인 A하사가 추행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적인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다음 날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로 마음먹은 이 중사는 현장에 있던 노 상사와 A하사의 태도에 다시 한번 실망했다고 한다. “차 안에서 이상한 일 못 느꼈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추행 직후 장 중사는 여러 차례 범행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장 중사가 본인의 행동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차량 블랙박스와 관사 CCTV, 두 차례의 사과 문자 등 진술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충분했다. 그러나 장 중사는 군 검찰 조사에서 일부 내용에 대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이 중사는 남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에서 피해를 보고받은 노 상사가 “계속 한숨만 쉰다”고 했고 면담을 하자는 노모 준위에 대해서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낙담하기도 했다. 결국 이 중사를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노 준위와 노 상사는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