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野獸)의 사냥 동선

입력 2021-06-14 01:35

아프리카 프릭스의 서머 시즌 초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아프리카는 13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21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정규 리그 1라운드 두 번째 경기에서 DRX를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꺾었다. 아프리카는 2승0패(세트득실 +3)를 기록, 젠지와 같이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아프리카는 지난 11일 프레딧 브리온전보다 향상된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이날 2세트는 경기 시작 후 3분 만에 탑 2대2 전투를 통해 빠르게 승기를 잡았다. ‘기인’ 김기인(루시안)이 상대방의 갱킹으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고, 곧장 전장에 합류한 ‘드레드’ 이진혁(리 신)이 ‘표식’ 홍창현(킨드레드)을 쓰러트린 순간 빠르고 거대한 스노우볼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아프리카와 이진혁이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이진혁에 따르면 이때 아프리카는 홍창현이 탑 갱킹을 시도할 거로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고 있었다. 경기 후 이진혁과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멋진 초반 설계와 동선을 복기해본다.
2021 LCK 서머 시즌 중계 화면 갈무리

김기인이 ‘칼챔’ 루시안을 골랐다. 이진혁은 김기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적 레드 스타트’ 동선을 선택했다. 홍창현의 초반 활동 동선을 아래쪽으로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김기인과 함께 레드 팀 상단 정글로 과감하게 진입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상단 정글 캠프를 독식하는 대신 하단 정글 캠프는 홍창현에게 전부 양보하겠다는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2021 LCK 서머 시즌 중계 화면 갈무리

애초 ‘반갈(정글러의 활동 지역을 위아래로 가름)’ 전략을 구상한 듯했던 그는 레드 팀의 칼날부리를 사냥한 뒤 즉흥적으로 동선을 수정했다. 갑자기 미드를 활보해 블루 팀의 칼날부리로 향했다. 미드를 횡단보도 건너듯 뚜벅뚜벅 지나가며 ‘블루 팀 하단 정글로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홍창현에게 전했다. 그는 1대1 대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미드 횡단 하나로 두 정글러의 남은 반찬 갯수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2021 LCK 서머 시즌 중계 화면 갈무리

이진혁은 이미 레드 팀의 붉은 덩굴정령(레드 버프)과 칼날부리 등 2개 캠프를 사냥한 상태였고, 앞으로 블루 팀의 6개 캠프를 추가로 독식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홍창현은 레드 팀의 푸른 파수꾼(블루 버프), 심술 두꺼비, 어스름 늑대, 돌거북 등 총 4개 캠프를 사냥하는 데 그치는 상황에 놓였다.
2021 LCK 서머 시즌 중계 화면 갈무리

정글러라면 정글 캠프로 꽉 찬 미니맵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이제 블루 팀의 칼날부리, 블루 버프, 돌거북을 모조리 사냥한 뒤 상단 정글로 향하는 게 레벨 업을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진혁은 칼날부리만 사냥하고는 바로 상단 정글로 향했다. 어스름 늑대도 건드리지 않고 블루 버프와 심술 두꺼비만 처치했다.

이진혁은 곧 탑에서 갱킹 또는 싸움이 발생할 거라고 직감해서 이런 동선을 짰다고 밝혔다. 그는 이때 홍창현에게 남은 정글 캠프가 레드 팀 돌거북밖에 없으므로 홍창현도 탑 근처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홍창현이 돌거북을 사냥한 뒤 탑을 찌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자신도 빠르게 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2021 LCK 서머 시즌 중계 화면 갈무리

물론 홍창현의 갱킹 설계도 치밀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가운데 부시로 진입해 ‘알고도 당하는’ 땅굴 갱킹을 성공시키는 듯했다. 이때 이진혁은 위쪽 바위 게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기인이 간발의 차이로 생존에 성공했고, 부리나케 달려온 이진혁이 역으로 킬을 따냈다. 이진혁은 이 시점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직감했다고 밝혔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