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 경찰, 검은 옷 입으면 수색…2년 만에 민주화시위 흔적 사라진 홍콩

입력 2021-06-13 17:20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아그네스 차우가 지난 2019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선동한 혐의로 수감된 지 약 7개월 만인 12일 교도소에서 나오고 있다. 차우는 지난해 11월 구류 처분을 받고 수감됐으며, 그 뒤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화 시위 2주년을 맞은 홍콩은 언제 시위가 있었냐는 듯 크게 위축된 분위기였다. 홍콩 당국은 사람들이 모일 만한 도심 곳곳에 경찰을 배치해 기념집회를 틀어막았다. 지난해 6월 말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민주진영 씨가 마르면서 반정부 운동의 동력이 사라진 결과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민주화 시위 2주년 기념일인 12일 대형 쇼핑몰이 몰려 있는 코즈웨이베이 인근 거리를 차단하고 차량 통행을 막았다. 또 5~6명씩 조를 이뤄 다니면서 사람들이 몰려 있다 싶으면 확성기에 대고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시위의 상징인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검문검색의 타깃이 됐다. 홍콩자유언론(HKFP)은 13일 보호용 방독면을 쓴 채 쇼핑몰 하이산플레이스 옆을 지나던 한 30대 남성을 경찰이 멈춰 세우고 휴대전화에 시위 관련 선전물이 있는지 확인한 뒤 보내줬다고 전했다.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도 몇몇 시민들은 기념 집회를 벌였다. 그러다 최소 4명이 공공질서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경찰은 지난 11일 불법집회 참여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야권 활동가 2명을 체포했고 길가에서 선전 활동을 벌이던 부스 운영자들에게는 벌금을 부과했다. 다만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 등 각국에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2년 전 반정부 시위에 불을 당긴 건 홍콩 당국의 범죄인 송환법 추진이었다. 홍콩 시민 100만명은 송환법 강행 움직임에 반발해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다. 대규모 시위는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민주화 운동으로 커졌다. 6월 12일은 시위대가 송환법 심의가 예정된 입법회를 포위하고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던 날이다.

민주화 시위 흔적이 사라진 홍콩에선 이날 ‘중국 공산당과 일국양제’를 주제로 한 포럼이 열렸다. 뤄후이닝 홍콩 주재 중국 연락판공실 주임은 포럼 연설에서 “조국이 위대한 현대 사회주의 국가를 향해 나아감에 따라 홍콩 동포들은 당 정체성과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뤄 주임은 지난해 1월 홍콩에 주재하는 중국 중앙정부의 최고 책임자로 깜짝 발탁된 인물이다.

그간 중국은 홍콩 문제를 다룰 때 ‘중앙정부’란 표현을 썼지 ‘공산당’은 내세우지 않았다.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될 때 적용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포럼에선 홍콩 문제에 관한 공산당 역할이 주도적으로 언급됐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 학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은 지난 수십년간 공산당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반감을 의식해 저자세를 유지했다”며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홍콩 문제에 있어 공산당의 역할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홍콩 내 반중 활동을 처벌하는 보안법에 이어 친중 인사들만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선거제도도 개편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전면적인 홍콩 통제를 당의 성과로 내세우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