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처리 과정에서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바꾸는 지휘는 결단코 하지 않았다는 점만은 자부합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재직 마지막 날인 10일 서울중앙지검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편지글을 남겼다. 이 지검장은 “부임 이후 왜곡된 시선으로 어느 하루도 날선 비판을 받지 않은 날이 없었고, 저의 언행이 의도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곡해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지검장은 “냉정한 고언과 비판은 저를 겸허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제가 버텨 나갈 수 있는 힘이 됐다”며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지검장은 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한 이후의 시간을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배의 중심을 잡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했다. 그의 재직 중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 등 검찰을 바라보는 여론이 판이하게 갈리는 사건들의 수사가 진행됐었다.
이 지검장은 “검찰의 일부 잘못된 수사 방식과 관행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 기본과 원칙, 상식에 맞는 절제된 수사를 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왔다”며 “수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최대한 수긍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고, 그에 따라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론을 내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형법의 겸억성(謙抑性)을 생각하는 수사방식을 관철하려 나름 노력했지만 저의 역량부족으로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지검장은 “기소가 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근무했을 때 안양지청 수사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있다. 그는 편지글 말미에서 “저는 전북 고창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형편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서울지검 검사로 첫출발을 했다”고 했다. 그는 “초임검사로 부장검사로 검사장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이곳 서울중앙지검에서 일할 수 있어 크나큰 영광이었고 행복이었다”고 했다.
이 지검장의 이임식은 서울중앙지검 13층에서 일부 간부들만 참석하는 방식의 비공개 행사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검장의 이임식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피고인 신분인 점이 고려된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검장은 이후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급 간부 보직변경 신고식에 참석해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이동하는 한동훈 검사장을 만났다. 신고식 이후 이 지검장이 한 검사장에게 다가가 웃으며 “반갑다”고 말했고, 한 검사장은 악수로 화답했다. 이 지검장은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한 검사장을 수사했고, 수사팀의 한 검사장 무혐의 의견을 결재하지 않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