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인구와 기업이 몰리고 지방은 소멸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정부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고 정부 예산에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있습니다. 해마다 약 10조원이 ‘균형발전’ 명분으로 쓰입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까요.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은 정부 균형발전예산에 관한 심층분석 기사를 5회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신안산선 뚫리면 자동차는 놓고 다니겠죠. 서울까지 30분이면 간다는데.”
8일 경기도 고잔신도시 안산문화광장에서 만난 주민 정모(43)씨는 ‘신안산선 호수역’ 공사 현장 표지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대형마트와 영화관 등이 늘어선 광장 주변은 현재 거대한 공사장이다. 지난해 4월 신안산선 착공 후 발파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 이곳에서 서울 여의도에 가려면 버스, 지하철 4호선, 1호선, 버스를 차례로 타고 1시간30분을 가야 한다. 2025년 신안산선이 개통되면 30분으로 줄어든다. 정씨는 “새벽 일찍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안산선 공사를 앞두고 가장 발빠르게 반응한 건 부동산 시장이다. 불과 2년 전 5억원대였던 주변 아파트(110㎡) 가격은 현재 10억원까지 치솟았다. 서울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와 교통 개선 기대감이 겹치면서 사겠다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한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작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올해 3, 4월 확 뛰었다”며 “2년 전만 해도 지지부진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말로만 ‘균형발전’ 좇는 예산이 있다
안산에서 여의도로 가는 신안산선 건설에는 국민이 낸 세금이 들어간다. 전체 사업비가 3조3465억원인데 세부내역을 뜯어보면 균형발전예산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1906억원이 편성됐고, 2010년부터 계산하면 지금까지 5814억원이 투입됐다.
균형발전예산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05년 만들어진 예산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말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함께 생겨났다. 지역 발전 사업에 쓸 국가 예산을 따로 편성한다는 취지였다. 균형발전예산은 2005년 약 5조4000억원을 시작으로 점점 늘어나 해마다 10조원 안팎이 책정됐다. 지난해까지 균형발전예산을 더하면 모두 144조원이다. 지금 이 예산 일부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심화하는 사업에 쓰인다. 균형발전예산이 투입돼 서울 접근성이 좋아진 경기도 일부 지역은 서울보다 집값이 더 비싼 상황이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민간연구소인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2008년부터 2021년까지 균형발전예산으로 시행되는 사업과 예산 내역을 전수조사했다. 기획재정부가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열린 재정’에 공개한 연도별 세출 세부사업 내역을 모두 집계했다. 그 결과 동부간선도로(988억원), 태릉~구리광역도로(128억원) 등 수도권 교통망 확충과 관련된 69개 사업에 균형발전예산 6조9365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 및 물류 분야에 배정된 전체 균형발전예산 총액(23조2587억원)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낙후 지역 발전에 쓰여야 할 균형발전예산이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 좋은 수도권에 투입되는 것은 예산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예산은 현재 공사 중인 신분당선 노선(강남~용산) 확장 사업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에도 투입되고 있다. 신분당선 확장에는 2017년부터 총 1932억원이 배정됐다. GTX 사업에도 지난 10년간 4428억원이 들어갔다. 2011년 50억원이었던 GTX 관련 균형발전예산은 올해 1687억원으로 급증했다.
신안산선과 GTX, 신분당선은 국토교통부가 1995년부터 추진하는 ‘광역철도 건설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신안산선은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교통문제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 GTX-A노선의 경우 ‘수도권 도심에서 서울 도심까지 30분대 접근’이 사업 목표다. 전체 사업비 절반은 민간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비 70%·지방자치단체 30%(서울은 국비·지자체 각 50%)로 배분된다. 국비 재원은 모두 균형발전예산이다. 올해 예산이 책정된 15개 광역철도 사업 가운데 비수도권 사업은 대구권광역철도 등 3개에 그친다. 3개 사업 예산은 501억원. 전체 예산(8218억원)의 16.4% 수준이다.
수도권 광역 교통망 사업은 경기도 집값을 뒤흔드는 최대 이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서 지난달 경기도 주택(아파트·단독주택 등) 매매가격은 한 달 새 1.0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안산선과 GTX 발표 등이 이어진 경기도 시흥(3.26%)과 군포(2.58%)시를 비롯해 안양시 동안구(3.19%) 안산시 단원구(2.80%) 등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올 들어 매달 1% 넘게 오른 시·도는 경기도와 인천시뿐이다.
서울 접근성이 개선된 수도권 지역 인구는 매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신안산선에 3기 신도시까지 예정된 시흥시 인구는 2016년 5월 39만명에서 지난달 51만명으로 5년 만에 30% 급증했다. 경기도 전체 인구도 같은 기간 1259만명에서 1348만명으로 불어났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줄이기 위해 탄생한 균형발전예산이 인구의 수도권 집중에 기여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에게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회계)를 만들고도 균형발전 외에 다른 데 막 쓰고 있다. 동부간선도로나 신분당선, GTX가 국가 균형발전에 관련된 사업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정 총리도 “말이 균특회계지, 수도권 집중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며 “균특회계가 초창기엔 여러 역할을 했지만 흐지부지되면서 이렇게 변질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도 ‘균형발전’ 예산
수도권에 들어가는 균형발전예산은 교통 분야만이 아니다. 서울시 등 수도권 지자체로 지원되는 예산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다. 서울시는 2008년만 해도 균형발전예산 분배 금액이 361억원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적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3년차인 2010년 들어 1493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듬해 828억원으로 줄어든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문재인정부 2년차인 2018년부터 다시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서울시에 분배된 예산은 총 2267억원이다. 2008년과 비교하면 527% 증가했다. 광주(1533억원) 대전(1682억원) 울산(1386억원)보다 많다. 서울시는 이 돈을 도시재생·주거환경개선 사업 등에 쓴다.
서울 25개 자치구에 직접 지원되는 균형발전예산도 크게 늘었다. 서울 자치구엔 2015년까지 이 예산이 거의 분배되지 않았다. 2015년에는 강서구(1억2900만원) 한 곳에만 균형발전예산이 책정됐다. 그러나 올해는 5개 구(성동·광진·성북·양천·송파)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가 이 예산을 받는다. 강남구에도 15억7000만원이 배정됐다. 참여정부 당시 균형발전예산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시는 국가에서 받은 균형발전예산을 재원으로 자체적인 ‘균형발전’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균형발전예산 2200억원 중 75억원을 ‘광역버스 환승 정류소 환경개선’ 사업에 배정했다. 광역버스 승객이 사당역 홍대입구역 강남역 등 서울 7개 주요 지하철역이나 시내버스로 바로 갈아탈 수 있는 정류소를 만드는 사업이다. 지방 균형발전을 목표로 한 예산이 서울시로 내려온 뒤 서울 집중 현상을 강화하는 데 쓰인 셈이다.
일반 예산으로 추진돼야 할 사업이 균형발전이란 이름만 달고 추진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1월 ‘서울시 12개 특별회계분석’ 보고서에서 “균형발전예산으로 편성된 사업 중 상당수가 과거 일반회계나 도시개발특별회계로 추진했던 사업들”이라며 “균형발전이란 명칭에 걸맞은 사업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역시 균형발전예산 지원 금액이 해마다 늘고 있다. 2008년 6303억원에서 올해 1조558억원으로 67.5% 증가했다. 올해 균형발전예산이 1조원 이상 분배된 곳은 경기도와 전남도(1조1839억원) 경북도(1조1013억원) 등 3곳뿐이다. 부산(3249억원) 대구(2732억원) 등 광역시와 강원도(8659억원) 전북도(8669억원) 등은 청년 인구가 급속히 빠져나가는 지역이지만 경기도보다 적은 예산이 분배됐다.
다만 수도권은 균형발전예산 배분에서 타 지역 대비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시·군·구에도 다른 지역 못지않게 낙후하고 청년 인구가 빠져나가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11월 4일 경기도의회에 출석해 “(균형발전예산을) 정부가 선정할 때 지역 균형을 고려하기 때문에 사실 경기도는 역차별받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인구 등을 감안하면 전체 균형발전예산 대비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항변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예산 나눠먹기’”
정부는 매년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발표하고 지자체별 예산 한도액 산정 기준 등을 공개한다. 인구·면적과 지방소득세, 노령인구 비중, 재정력지수 등이 산정 기준이다. 하지만 지역 갈등과 지자체 반발을 이유로 기재부는 지역별 균형발전예산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예산 집행 및 평가 결과도 비공개다. 과거 국가균형발전법 시행령 34조2항은 기재부가 균형발전예산 결산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했지만 이 조항은 2014년 3월 삭제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19년 8월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 “(균형발전예산) 집행 결과 등을 파악할 순 있지만 대외 공개하기엔 적절치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관행적으로 이어진 균형발전예산 배분 방식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처음부터 서울에도 균형발전예산이 투입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면서 “전국이 ‘예산 나눠먹기’를 하며 좀 더 열악한 곳이 더 받는다는 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채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구호만 있었을 뿐 분명하지 않았다는 데 문제의 근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성경륭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각 지자체가 지역발전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비전이 분명해야 한다”며 “예산 총량을 키우는 데만 관심 있고 구체적 계획이 부족하다면 균형발전예산을 아무리 투입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 시·도 및 서울 25개 자치구 균형발전특별회계 현황을 아래와 같이 공개합니다.
◇ 기획재정부는 14일 “기사에 언급된 광역시도 등 지자체 균형발전예산은 우리부 열린재정이나 행안부 지방재정365에서 확인이 불가한 수치”라고 밝혔습니다.
취재팀은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전국 지자체 연도별 통합재정개요 내역 중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보조금(511-02 계정) 항목에 배정된 예산을 집계했습니다. 지방재정365의 연도별 통합재정개요 및 각 지자체 본예산서를 취합, 정리해 확인했습니다. 금액은 본예산 총계 기준입니다.
기재부는 각 지자체별 균형발전예산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기획재정부는 14일 “기사에 언급된 광역시도 등 지자체 균형발전예산은 우리부 열린재정이나 행안부 지방재정365에서 확인이 불가한 수치”라고 밝혔습니다.
취재팀은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전국 지자체 연도별 통합재정개요 내역 중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보조금(511-02 계정) 항목에 배정된 예산을 집계했습니다. 지방재정365의 연도별 통합재정개요 및 각 지자체 본예산서를 취합, 정리해 확인했습니다. 금액은 본예산 총계 기준입니다.
기재부는 각 지자체별 균형발전예산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listen@kmib.co.kr
[11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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