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 수사본부는 철거업체가 지자체에 제출한 계획서대로 철거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정황을 포착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시공사 광주사무소와 철거업체 사무실 2곳, 감리회사을 포함한 5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철거업체는 지난달 25일 붕괴사고 건물을 포함한 수십 채의 건물에 대한 해체계획서를 담당 광주 동구에 제출하면서 “학동 4구역 재개발 구역 내 5층 규모 건물은 3~5층 성토체를 쌓아 중장비로 철거작업을 벌이고 1~2층 저층은 성토체와 잔여물을 제거한 뒤 철거한다”고 작업순서를 제시했다.
또 철거건물의 안정성 보강 차원에서 지지대를 설치하고 옥탑층 외벽부터 비내력벽, 내력벽 순으로 3층까지 철거하기로 했다.
공법은 이른바 ‘무진동 압쇄 공법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굴삭기에 가위 모양의 철거기구를 달아 일반 구조물을 부수고 집어내는 방식이다.
경찰은 이와 관련, 동구청 공무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현장에 투입된 철거업체가 붕괴한 건물의 4~5층은 그대로 둔 채 지난 1일쯤부터 건물 후면의 2층짜리 저층 구조물을 먼저 부수는 등 해체계획서에 따른 작업순서를 어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건물 하부 구조의 안정성이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붕괴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붕괴한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1층 연면적 1500㎡ 규모로 건물 후면에 오래전부터 별관 성격의 2층 구조물이 별도로 들어서 있었다.
철거업체는 사고 전날인 8일 저층을 철거한 자리에 폐자재와 토사 등으로 건물 3층 높이의 성토체를 쌓았고 그 위에 굴착기를 올려 9일 본격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경찰은 무리한 저층 구조물 철거와 함께 작업의 속도를 내기 위해 철거업체가 의도적으로 건물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려 했다는 의혹도 규명할 방침이다. 정상적 공법이라면 꼭대기부터 철거를 해야 하지만 철거업체가 건물 가운데를 먼저 부수면서 건물이 접히는 방식으로 한방에 철거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고 발생 하룻만인 이날 오후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광주 현장사무소 등 5곳에 강력범죄수사대 수사관을 보내 관련서류 등을 압수했다.
건물철거 전문가들은 건물 붕괴 사고 원인이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건물이 무너지는 방향을 보면 철거 작업이 안전을 고려해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폐자재와 흙더미를 쌓고 굴삭기를 그곳에 올려 동원한 당시 철거 작업은 건물 후면의 철거작업으로 수평 하중이 더 앞쪽으로 쏠릴 수 있어 건물의 무게중심 등 구조적인 부분을 수시로 고려해 철거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굴삭기를 올리기 위해 먼저 건물 뒤편에 흙산을 쌓는 순서로 작업이 이뤄졌다면, 흙 무게로 인해서 건물이 도로 쪽으로 밀리면서(수평 하중)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도 “굴착기로 건물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면 건물의 모든 면을 균일하게 깎아내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한다”며 “이런 방식이 철거 계획에 명시됐던 부분인지 들여다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 동구 조현기 건축과장은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의심된다며 “시공자와 감리업체를 형사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전성필 신용일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