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회유 가능성” 김학의 뇌물수수 재판 다시 한다

입력 2021-06-10 15:54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수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대법원이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재판에 출석하기 전 증인을 사전에 면담했는데, 이후 법정에서 이뤄진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2년 전 김 전 차관 사건을 재수사했던 수사단은 적법절차에 따라 증인을 사전에 면담했고, 회유나 압박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차관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및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 삼은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사는 1심과 원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신문 전 증인을 소환해 면담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 진술조서 등 내용을 확인했다”며 “그 직후 이뤄진 증인신문에서 차명 휴대전화와 관련해 종전 진술을 번복하는 등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구체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면담의 영향으로 진술이 변경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차명 휴대전화 관련 법정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김 전 차관 측이 지난 2월 청구한 보석도 허가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차관은 법정구속 이후 220여일 만에 출소하게 됐다.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 사업가 최모씨, 저축은행 회장 김모씨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 전 차관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또는 공소시효 완성으로 인한 면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은 사업가 최씨에게 4300여만원 상당의 상품권·카드 대납액 등을 받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향후 파기환송심에서는 김 전 차관이 최씨로부터 받은 뇌물 부분에 대한 심리가 재차 진행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검사의 증인 사전면담 뒤 이뤄진 증언의 신빙성을 평가하고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검사의 일방적인 증인 사전면담을 규제하는 기틀을 마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무죄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심리를 다시 하라”는 취지라고도 덧붙였다. 검사의 회유가 없었다는 점만 입증되면 유죄로 판단될 여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김 전 차관의 무죄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측은 “증인 사전면담은 검찰사건사무규칙 189조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이고 해당 증인을 상대로 한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입증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검사가 증인신문을 신청한 경우 검사가 신청한 증인 등을 상대로 사실을 확인하는 등 적절한 신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