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경찰수사 속도…국과수 합동감식

입력 2021-06-10 15:20 수정 2021-06-10 20:27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 수사에 나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청은 10일 오후 현장에서 구체적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 감식을 벌였다.

이와 관련, 경찰은 사고 직후 구성한 전담수사팀을 광주청 수사부장(경무관)이 본부장을 맡고 강력범죄수사대·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등을 전원 투입하는 수사본부로 격상시켜 사고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과 소방청 등은 이날 참사현장 건물잔해 더미에서 끄집어낸 시내버스 차체를 광주과학수사연구소로 견인해 정밀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 수사본부는 17명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붕괴 참사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공사로 인해 유발됐다는 의혹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철거 원청회사인 서울의 A회사가 광주 B회사에 하청을 주고 철거공사에 착수한 구체적 경위를 캐고 있다.

하청을 받은 B업체가 다른 업체에 헐값에 재하청 계약을 했는지 여부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하청과 재하청 등 하도급 계약과정에서 보통 원도급액의 80%, 60%로 공사금액이 단계별로 차감된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현장 근로자 등을 상대로 소속 회사 등을 정밀 조사하고 있다.

붕괴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연면적 1590㎡ 규모다. 구조물 해제 전문 A업체가 지난달 14일 광주 동구청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같은 달 25일 허가를 받았다. 연면적 500㎥ 3층 이상은 구청 허가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해당 업체는 6월 30일을 기한으로 철거 허가를 받았다.

A회사는 직후 하청업체인 B회사에 공사를 맡겼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다수의 철거 장비를 갖추고 광주 북구에 철거업체 등록을 마쳤지만, 실제 그동안 철거공사에는 그동안 많이 참여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에 따라 시공 경험이 미미한 B업체 또는 재하청을 받은 특정 업체가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안전수칙이나 절차를 생략한 채 무리하게 철거를 강행하다가 붕괴 참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본부는 앞서 9일 재개발 조합과 철거공사 현장 관계자, 목격자 등 10여 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마쳤다.

경찰은 철거공사가 원청→하도급→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방식으로 이뤄졌을 경우 원가절감을 위해 안전시설과 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원청 금액의 절반 수준에 재하청을 받은 업체가 철거비용을 무조건 줄이기 위해 부실한 안전대책에도 공사를 벌이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철거공사에 나선 근로자 다수는 재하도급 업체 소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 철거업체와 계약 경험을 가진 시행업체 대표 김 모(51) 씨는 “원청업체가 건축물에 따라 3.3㎥당 지상 25만 원, 지하 50만 원 안팎에 공사를 수주해 15만 원, 40만 원 수준에 하청을 주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며 “재하청을 하면 그 이하로 공사비를 깎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철거업체는 현금이 보장되는 철근이 가장 주 수입원”이라며 “철근을 누가 갖고 지지대를 어떻게 설치하느냐 등 공법에 따라 계약방식과 금액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현장에 해체공사 감리자가 없었고 붕괴 조짐 이후에도 인도만 부분적으로 보행자 통행을 차단하고 차량통행이 잦은 차도는 통제하지 않은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철거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는 현장의 붕괴방지와 교통안전, 추락사고 등의 대책을 전담하는 감리사무소 등 책임자를 반드시 지정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학동 사고현장에 감리자는 없었다. 이에 따라 철거공사를 허가한 광주 동구는 철거업체 시공자와 감리자를 형사 고발할 방침이다.

경찰은 붕괴 직전 인도는 통제했지만, 차량통행이 잦은 차도는 전혀 막지 않은 게 업무과실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지고 있다. 철거 중 무너진 건물은 바로 앞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를 순식간에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를 빚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전반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과실이 드러나면 예외 없이 엄정하게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