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당한 공군 女장교에 성폭행 시도한 군병원 의사

입력 2021-06-10 07:35 수정 2021-06-10 09:59
국군수도병원 의사 B씨가 성추행 피해자이자 자신이 진료를 담당했던 공군 여성 장교 A씨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으니 밥 한끼 하자"며 보낸 문자. YTN 캡처

공군 여성 장교가 부대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국군수도병원 의사에게 또다시 성폭력 피해를 본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두 번째 가해자인 의사는 대통령 주치의를 여러 차례 역임했던 인물로 확인됐다.

10일 YTN에 따르면 공군 장교로 입대해 지난달 대위로 전역한 A씨는 2017년 국군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육군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성추행 당시 다른 여군들을 언급하며 “그런 사람들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너 같은 사람이 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큰 충격에 빠진 A씨는 국군수도병원에서 당시 신경과 과장이던 70대 B씨에게 진료를 받았다.

A씨는 3년 뒤 국군수도병원을 찾았다가 B씨를 다시 만나게 됐다. 그는 A씨에게 “부사관 일은 잘 해결됐느냐”며 조언을 해주고 싶다는 핑계로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 A씨는 “편안하게 말을 해주고 나이도 할아버지니까…”라며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아. 스트레스 때문이야’라고 말해주니까 안도감이 들었다”고 식사 제안을 승낙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식당에서 나온 뒤 A씨를 근처 자신의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간 B씨는 돌변했다. A씨는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스타킹을 신었으니까 스타킹을 벗기려고 했다”면서 “제 손을 가져다가 계속 자신의 성기에 가져다 댔다”고 말했다.

A씨는 간신히 집 밖으로 달아났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해리성 기억상실증, 마비 등의 증상을 겪었다. 그는 결국 사건 1주일 만에 B씨를 부대에 신고했다.

B씨는 조사 과정에서 아파트 CCTV에 찍힌 강제 추행 장면을 본 뒤에야 범행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강제추행과 강간치상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당시 B씨는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선처해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B씨의 2차 가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육군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두통과 마비 증세를 겪던 A씨에게 진료 중에는 “별일 아니니 안심하라”며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다른 군의관들에게는 “남자들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이상한 여자”라며 험담을 했다고 한다.

군 조사 중에는 A씨가 접근하기 쉬운 여자로 보였기 때문에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에서는 자신의 성폭행 시도가 아닌 육군 부사관 사건으로 인해 A씨에게 생긴 정신질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정신적 상해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 8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앞서 징역 10년을 구형했던 군 검찰은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할 방침이다.

A씨는 B씨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지 7개월 만에 전역해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내 잘못인 것 같다. 그 사람이 ‘너 때문’이라고 말했고, 그 전의 사건도 ‘네가 그런 여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며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