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는 게 좋을까 아니면 어른이 되는 것도 가치가 있을까.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팬’이라면 영원한 젊음을 택했을 게 뻔하다. 아이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어른되는 건 흔히 불행으로 여기는 동화가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있다. 하지만 영화 ‘웬디’는 불편한 질문을 다시 묻는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웬디도 피터 팬과 같은 생각일까.
벤 자이틀린 감독은 ‘웬디’로 이런 질문을 좀 더 효과적으로 던지기 위해 피터 팬을 재창조하는 모험을 택했다. 우선 웬디와 형제들은 더는 19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웬디(데빈 프랑스)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철도 바로 옆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식당 위층에서 산다. 어린 시절 그들을 키우기 위해 꿈이 없어진 어머니를 보면서 목표 없는 침울함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피터의 마법과 비행은 거대한 화물열차로 대체된다. 웬디는 어느 날 한밤중 지나가는 기차 위에 피터가 보이자 창밖으로 뛰쳐나가 기차에 몰래 타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마법이 사라진 현실 세계의 영상은 피터 팬을 동화에서 자연스럽게 성인 우화로 바뀌게 만든다. 그는 9일 화상 인터뷰에서 “환상적인 요소들을 현실에서 구현한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관객이 CG를 통해 스크린 상에서 뭔가 상상하고 접하는 게 익숙한데, 실제로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법의 현실 표현은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감독은 CG를 포기하고 정말 세상 속에 있는 네버랜드를 찾아 나섰다. 그는 “사람의 흔적이 없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장소와 풍경이 필요했다”며 “웬디와 피터의 놀이터는 나무와 바다, 바위와 폐허다. 그들은 밤마다 놓던 곳에서 잠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현실에서 찾은 네버랜드는 서인도 제도에서 가장 최근까지 활동했던 화산섬인 몬트세라트섬이었다. 화산으로 매장된 도시 위에 산과 우거진 열대 우림, 절벽과 바다 등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 스크린에 보이는 모든 현장은 실제 장소다.
메세지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캐릭터도 다른 방식으로 변용했다. 네버랜드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망하는 역할을 하면서 모성이 강조됐던 웬디는 사건의 주체로 나선다. 그는 “모성이 취약성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터역에는 과테말라 출신 흑인 비전문 아역배우 야수아 맥도를 현지에서 캐스팅했다. 자이틀린 감독은 “피터는 백인 아이로 묘사돼왔지만, 야수아가 캐리비안의 소수민족이어서 굉장히 독특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며 “원작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적 측면을 벗어나 여러 가지 정치적인 메시지를 벗겨내고 내면에 본질적인 인간의 질문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웬디에서 등장하는 노인과 아이 둘 다 불완전하다. 아이는 자유롭게 상상하지만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늙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순간순간의 즐거움만을 찾아 나간다. 하지만 상상력을 저버리는 순간 아이는 노인으로 변한다. 영원한 젊음을 줬던 심오한 바다괴물 ‘어머니’가 힘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노인으로 변해버린 한 아이는 “늙어가는 건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어주지 않을 때 느낀다”고 말한다. 노인은 젊음에만 집착하고 죽은 사람처럼 표류한다.
자이틀린 감독에겐 웬디의 선택은 나이 드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삶이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극단적인 젊음과 늙음의 대비로 이를 보여준다. 영원한 젊음을 추구하는 것도, 늙고 쓰라린 삶을 사는 것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감독이 선댄스와 칸 등에서 호평을 받은 지난 작품 ‘비스트’에 이어 아이에 천착하는 이유로는 “아이들과 작업을 통해서 동심으로 돌아가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볼 수 있다”며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소실한 생각을 경험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어렸을 때 누렸던 자유와 영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까가 궁금했다”고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 어른이 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지만, 어렸을 때의 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어른으로 사는 삶을 즐기게 됐다”며 “어른이 된다는 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게 아닐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 나이가 32살에서 38살이 됐는데 나이 드는 게 부정적이지 않고 새로운 영감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30일 개봉.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