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호소한 공군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군이 피해자를 회유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지난해 7월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에서도 성추행 신고 접수 후 군이 고소 취하를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7월 31일 육군 특전사 양성평등상담소에는 특전사 소속의 40대 소령 A씨가 전날 회식 자리에서 30대 9급 군무원 B씨를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B씨 변호인 이은의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B씨 및 부서 팀원 2명과 함께 경기도 이천의 한 식당에서 회식을 하던 중 B씨의 손을 잡고 엉덩이와 허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후 A씨는 회식 자리가 끝난 뒤 B씨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강제로 입을 맞추고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했다는 게 변호인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A씨가 B씨의 손목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 손목에 멍도 들었다고 한다. 변호인 의견서에는 A씨가 “전부터 계속 보고 있었고 관심이 많이 갔다. 좋아한다. 받아달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적혀있다. B씨는 이튿날 곧바로 양성평등상담관에게 피해 사실을 유선으로 알렸다. 상담관은 B씨에게 “정식으로 수사가 이뤄져야할 사안”이라고 안내했고 공식적으로 사건 접수가 이뤄졌다.
정식 수사가 시작되면서 A씨 측의 회유가 시작됐다고 한다. 8월 4일 특전사 군사경찰단 수사과에 출석해 피해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군 경찰 수사관은 B씨에게 “고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A씨가 고소를 여기서 멈추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B씨 측은 “성폭력 가해자가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B씨는 정식으로 고소를 했고, 이후 A씨도 같은 달 말쯤 B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무고 사건의 피의자로 전환되지 않은 채 피해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무고 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피해자 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B씨는 10월 15일 군 검찰로부터 ‘참고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피해 사건에 대한 조사에서 군 검사는 “피해자 기억이 왜곡된 것 아니냐” “식당주인과 종업원(피해 사실을 진술한 목격자)이 작성한 진술서 내용이 거짓이냐”는 등 무고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이 변호사는 “무고 사건 관련 질의를 하기 위해선 B씨에게 무고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한다고 정확하게 알렸어야 했다”며 “피해 사건에 대한 참고인 조사였기에 B씨는 방어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했고 군검사까지 고소 취하를 압박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특전사 측은 “군사법원법 260조(제3자의 출석요구 등)에 따르면 성추행 사건에서 피의자가 아닌 사람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수 있어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으로 B씨를 조사했고, 당시 변호인도 입회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며 “성추행 사건과 무고 사건을 별건으로 보고 따로 조사를 진행하는 등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군검찰은 지난해 10월 30일 증거 불충분으로 성추행 사건을 불기소 결정했다. 다만 특전사 측은 A씨가 유부남인데도 미혼의 군무원과 부적절한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은 군복무 규정상 ‘품위유지 규정을 어긴 행위’로 보고 A씨에게 ‘서면경고’를 내렸다. 특전사 관계자는 “성추행 혐의가 없다는 군검찰 판단에 따라 자체 징계위원회는 개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지난해 12월 검찰의 수사가 부족하게 이뤄졌다며 재정신청을 했다. 이 변호사는 “군검찰이 강제추행 여부만을 한정해 수사를 했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 등에 대해선 법리적 검토를 하지 않아 재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지난 1월 B씨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추가로 고소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