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미래소년 코난’ 영혼, 이탈리아 바닷가 괴물 ‘루카’로

입력 2021-06-08 17:43
애니메이션 '루카' 스틸. 디즈니·픽사 제공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감독을 맡았던 추억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은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다. 코난은 폐허가 된 문명 이후 되살아난 자연에서 홀로 살아남고 친구 라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라나 덕분에 세상을 향한 모험에 발을 내딛고 욕심 가득한 어른들의 세상에 부딪힐 힘을 얻는다. 어린 시절 코난을 보고 자란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코난의 영혼을 순수한 바다 괴물 ‘루카’에 담아 이탈리아의 한 바닷가 마을로 불러왔다.

17일 개봉 예정인 카사로사 감독의 첫 픽사·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루카’는 ‘미래소년 코난’이 보여줬던 자연의 경이로움과 순수한 소년의 성장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애니메이션 '루카' 스틸. 디즈니·픽사 제공

코난에게 외딴 섬 밖 문명과 기계가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듯, 루카에게 바다 밖 인간 세상의 물건은 지구에 떨어진 외계 행성의 것이나 다름없다. 그 물건들을 수집해온 동족 친구 알베르토는 그에게 외친다. “닥쳐, 브루노!”(Silenzio, Bruno!)라고. 두려움 가득한 루카가 스쿠터에 오르기를 주저하자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 ‘브루노’를 떨쳐내기 위해 알베르토가 알려준 주문이다. 그러자 둘은 마법처럼 스쿠터에 몸을 싣고 찬란하게 빛나는 지중해 바다 위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알베르토는 카사로사 감독의 유년시절 동명의 절친을 떠올리며 탄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로 활동하는 수줍음 많고 소심하고 아이였는데, 자유로운 알베르토를 만났다”며 “알베르토는 부모님이 집에 없을 때가 많아서 마음껏 돌아다니고 말썽도 부리는 아이였다. 알베르토는 나에게 기존의 영역을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루카’는 카사로사 감독이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을 그리는 시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에서 솟아난 산을 따라 특이하고 가파른 해안의 마을들을 볼 때면 시간이 멈춘 듯했고, 바다에서 작은 괴물들이 나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애니메이션 '루카' 스틸. 디즈니·픽사 제공

그래서인지 ‘루카’에선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에서 볼 법한 한 편의 동화책같은 영상이 펼쳐진다. 2D요소를 컴퓨터로 렌더링해 3D의 세계로 가져와서 수채화 색감의 청량감을 준다. “이번 작품을 통해 나는 소설이 아닌 시를 쓰고 싶었다. 3D로만 완성된 CG는 너무 디테일하고 사실적이다. 풍부한 표현과 함께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회화적인 세상에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이 담겼다. 해변 마을 골목 어귀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 등 이탈리아 유명한 고전 영화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6년 만의 내놓은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가 캐릭터의 디테일로 해외에서 혹평을 들었다면, ‘루카’에선 픽사·디즈니만의 기술력으로 이를 구현했다. ‘도리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2’, ‘인사이드 아웃’, ‘토이 스토리 4’ 등에 참여한 캐릭터 제작진들이 바다 괴물 캐릭터 작업에 총동원됐다. 섬세한 디겉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의 오래된 지도에 그려진 상상 속의 크리처 등을 참고해 밑그림을 그렸다. 인간과 바다 괴물을 오가는 소년의 내면까지 표현하기 위해 3436개의 비늘을 그리고 입모양에만 220여개의 동작 변화를 주기도 했다. 한국인 애니메이터로 레이아웃 아티스트 김성영과 마스터 라이터 조성연도 함께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루카' 포스터. 디즈니·픽사 제공

200만 관객을 올해 최초로 달성한 픽사·디즈니의 앞선 작품 ‘소울’이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말하고자 했다면, ‘루카’는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아이의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말하고자 한다. 결국은 삶이다. 카사로사 감독은 “이 영화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우정의 힘에 관한 이야기”라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되는 유년 시절의 여름날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