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오시는 보건소나 구청 공무원이 엄청 늘었어요. 집단감염 한 번 터지면 주 7일에, 새벽까지 근무하는데도 대체휴가를 못 쓰니까…노동강도가 극도로 높아지고, 주변 직원들 병가신청이랑 약 복용도 늘었다는 말씀들을 하세요.” 7일 정부서울청사 공무원 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난 박세미 상담사는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과도한 업무에 내몰린 공무원들의 정신건강 상담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난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방역과 각종 지원업무를 도맡으면서 체력적·정신적 부하가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최근 부산의 한 간호직 공무원은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해,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8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마음건강센터 이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공무원 마음건강센터의 개인상담 건수는 4837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891건) 대비 67.3% 증가했다. 공무원 마음건강센터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과 가족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세종·서울·과천·대전·영남·호남 등 6개 지역에서 7개 센터가 있다.
특히 4차 대유행 우려가 나오던 지난 3~4월 상담 건수는 각각 1714건, 1327건이다. 박 상담사는 “지난해에는 오히려 상담 건수가 줄었는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다 보니 올해 상담 신청이 상당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개인상담 건수는 1만2000건이었는데, 새로 설립된 영남, 호남센터의 상담 건수(2569건)을 빼면 2019년 1만1065건보다 적다.
코로나 이후 ‘긴급위기지원’ 인원과 건수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9년 긴급위기지원 대상자는 17명에서 2020년 269명으로 늘었다. 2021년은 1~4월 4개월 만에 111명을 기록해 더 빠른 추세다.
상담을 못 받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이은진 서울 공무원마음건강센터장은 “정말 힘든 분들은 오히려 못 오고, 급박하게 상담을 신청하더라도 일 때문에 시간을 못 빼서 상담에 못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부처 공무원은 최근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며 상담을 취소하기도 했다. 박 상담사는 “못 올 걸 알기 때문에 신청조차 못 하는 분들이 훨씬 많을 거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과로 외에도 처음 맞닥뜨리는 재난 상황에서 매뉴얼에도 없는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함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공무원은 “새 이슈가 터졌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상부기관에 문의하면 ‘알아서 하라’고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공무원은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며 하소연했다.
성별·연령·직급별로는 여성, 20~40대, 비공무원(공무원을 보조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민간인 근로자)의 개인상담이 많다. 여성 상담자 비율은 70%로 2019년(59%)보다 11% 포인트 상승했다. 연령별로는 30대(29%), 40대(28%) 20대(19%) 50대(15%) 순이었다. 20대는 2019년 10%에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2019년 비공무원의 개인상담은 18%에 불과했지만 2021년 기준 38%로 2배 이상 상승했다.
상담사들의 업무부하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7개 마음건강센터에는 총 18명의 상담사가 있다. 각 센터별로 2~3명뿐인 상담사들이 모든 상담을 전담하고 있다. 서울 센터에도 신청자 20~30명이 항시 대기 중이다. 오늘 신청해도 1달 뒤에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상담사는 “하루에 상담을 5명 이상 소화하기 쉽지 않다. 상담 한 번에 1시간이 걸리고, 상담 준비나 방문상담 등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