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클라이밍’은 사회생활 중인 미혼 여성이 임신으로 겪는 고통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주인공 프로 클라이머 세현은 교통사고로 남자친구와의 아이를 유산한다. 하지만 평행 세계의 다른 세현은 같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여전히 임신 중이다. 이 두 세현은 교통사고 때 망가진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클라이머 세현은 입덧을 하고 폭식을 하는 등 임신증상에 시달리고, 급기야 임신테스트기에서 임신을 확인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세현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다. 석 달 전 겪은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세계 선수권대회는 코 앞이다.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던 유망주였던 세현은 이제 코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후배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경력을 위해 남자친구와의 결혼마저도 회피하고 있는 세현에게 임신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세현은 미혼 여성의 임신에 대한 육체적 사회적 고통을 다른 세계의 세현과 연결되면서 실제로 겪어나간다. 세계 대회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이를 두고 수군대는 사람들에게도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행세계에서 이어진 세현이 주는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아이를 낙태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하게 만들면서 점점 위태로운 상황으로 흐른다.
‘클라이밍’은 한국 3D 애니메이션의 도전이다. 카툰 렌더링을 한 듯한 2D와 3D 사이에 캐릭터들은 과장된 얼굴을 앞세운다. 크게 그려진 눈은 기괴한 듯 멍하다. 그들의 동작은 부드럽다기보다는 인위적이고, 그래서 그런지 처음 접할 때는 움직임에 어색함을 느낀다. 하지만 점차 세현이 겪는 기괴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캐릭터들이 내뿜는 기괴한 표정과 분위기에 끌려들어 가는 듯한 힘을 내보인다. 표정은 우울한 듯 변화가 적고, 동작은 로봇처럼 단절된 듯 보인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제작한 ‘클라이밍’은 김혜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달 21일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 콩트르샹 부문에 초청받았다. 매년 6월 프랑스 휴양도시 안시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오타와, 히로시마,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국제애니메이션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무녀도’가 심사위원 특별상, 2004년에는 ‘오세암’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영화를 직접 쓰고 연출한 김혜미 감독은 “임신을 통한 산모의 어두운 내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자고 생각했다”며 “클라이머로서 자아실현을 완성하고 싶은 엄마와 반드시 태어나야 하는 아이의 줄다리기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그렸다고 밝혔다. ‘클라이밍’은 앞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16일 개봉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