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마나’ 軍 성폭력 대응체계…피해 알고도 뒤늦게 간략 보고

입력 2021-06-07 16:53
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모 중사의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내 부실한 성폭력 대응 체계가 드러났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는 늑장·부실 보고로 일관했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유족 측은 7일 사건 초기 변호를 맡았던 공군 법무실 소속 국선변호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와 제20전투비행단, 제15특수임무비행단 등 3개 부대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공군 양성평등센터가 이모 중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국방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군 당국에 따르면 공군 양성평등센터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지 사흘 뒤인 3월 5일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도 한 달이 지난 시점인 4월 6일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에 보고했다. 이마저도 피해 내용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단순 집계였다.

국방부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성폭력 신고상담 접수시 사실 개요를 부처 양성평등 업무계통에 알려야 한다. 특히 중대 사고의 경우 세부내용을 최단시간 내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 중사는 22차례 상담을 받는 등 고통을 호소한 뒤 20비행단 성고충 전문상담관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이 중사의 사망을 막을 수도 있었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20비행단에 대해서도 이 중사의 신고 과정과 부대 측 조치, 보고 여부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 15비행단에서는 2차 가해 여부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검찰단 역시 2차 가해 등의 혐의를 받는 20비행단 간부들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두 달 가까이 가해자 조사에 나서지 않은 공군 검찰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공군이 성폭력 피해지원 매뉴얼에 적시된 ‘여성 변호사 우선배정’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군은 여성 국선변호사 선임 절차와 민간 변호사 선임 예산 지원 제도를 이 중사 측에 설명하지 않았다. 군이 민간 변호사와 접촉하던 이 중사에게 국선변호사 선임을 요구했고, 이 중사는 군을 믿었지만 사실상 방치됐다고 이 의원실은 지적했다.

이모 중사의 유가족 측 김정환 변호사가 7일 서울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 측은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국선변호사에 대한 고소장을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했다.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법무관인 국선변호사는 지난 3월 9일 선임됐지만 신혼여행, 자가격리 등을 이유로 이 중사가 사망할 때까지 전화·문자 몇 통 외엔 한 차례도 면담하지 않았다고 유족 측은 주장했다.

유족 측 김정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회유에 가담한 인원들로부터 1년여에 걸쳐 여러 번 강제추행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걸 보고 반복적인 추행이 이뤄진 사건”이라며 “국선변호인이 조력을 정상적으로 했다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