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일로 입 닫아줘…시장 비서에게 걸려온 비리 무마 전화

입력 2021-06-07 15:37 수정 2021-06-09 09:17

민선 광주광역시장 비서실이 잊을만하면 견디기 힘든 수난을 겪고 있다. 민선 5, 6, 7기 가릴 것 없이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툭하면 경찰과 경찰 수사 선상에 올라 체면을 구긴다.

시정 최고 책임자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이 내우외환에 휩싸이는 것은 치욕적이다. 자치경찰제가 지난달 시범 운영에 들어간 마당에 광주시장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자치경찰에게 비서진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려 수색을 당하는 것은 더한 굴욕이다.

최근 광주시장을 최측근에서 수행하던 비서 2명이 비리에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는 것도 모자라 7일에는 광주시장 비서실이 또다시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 수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은 시청 살림에 가장 중요한 정책 입안 공간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고급 개발정보 등도 집결하는 곳이다. 하지만 광주시장 비서실은 걸핏하면 경찰과 검찰수사로 난타당하기에 바쁘다.

이날 오전에도 이용섭 광주시장 전 운전기사와 수행비서의 비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 수사진이 들이닥쳤다. 광주서부경찰서 수사진은 비서실과 생명농업과 등 4곳에서 비서 2명과 관련 공무원이 사용하던 컴퓨터와 2018년 제25회 광주세계김치축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경찰은 이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비서 A(47·별정직5급)씨와 B(42·별정직6급)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행사 대행업체 M사 대표 C씨와 브로커 D씨도 입건했다.

A씨는 2018년 지방선거 직후 C씨에게 광주김치축제 대행업체로 선정되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K9 고급 승용차와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금 500여만원을 받아 B씨와 나눈 뇌물수수 의혹도 불거졌다.

실제 M사는 비서 A씨의 알선으로 5억여원 규모의 사업계약을 따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 시장이 과거 제19대 국회의원 시절인 2013년쯤부터 함께 일해온 전남 함평 출신의 비서 A씨가 그동안 용역사업뿐 아니라 건설업체 이권 등에도 광범위하게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함평은 이 시장의 고향이다.

40대 중반의 A씨는 자신의 가정에 얽힌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되는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드러나자 주변에 전화를 걸어 “나와 있었던 일을 함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검은 뒷거래를 무마하고 감추려는 시도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수억원대 이권개입 비위가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대형 비리사건으로 증폭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A씨의 사생활에 대한 엽기적 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애정행각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광주시장 비서실이 검찰과 경찰 수사로 털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선 6기인 지난 2017년 9월에도 당시 윤장현 시장의 외척인 정책자문관의 관급공사 비리 혐의로 광주지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앞서 민선5기 강운태 광주시장 때인 2013년 8월에도 민선 자치 이후 처음으로 비서실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 보증서 위조와 관련한 압수수색을 당한 바 있다.

광주시 공무원 노조는 평소 ‘청렴’을 금과옥조처럼 강조해온 이 시장 취임 이후에도 비서실 압수수색이 이어지자 한심하다는 반응이다. 노조는 6일 성명을 내고 이 시장이 7개월 만에 열린 대면 월례조회에서 공개 질타한 발언을 빗대 이 시장을 꼬집었다.

노조는 “이 시장이 공직기강 사례로 언급한 ‘일어나선 안 될, 황당함을 넘어선 일들’이 정작 시장의 최측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대응은 꼬리자르기식 입장문 뿐”이라며 “비리는 시장 최측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애궂은 하위직 공무원만 닦달했으니 청렴도가 회복될 리 없지 않은가”하고 직격했다.

정의당광주시당도 경찰의 시장실 압수수색이 진행된 7일 성명을 통해 이 시장을 몰아부쳤다.

성명은 “유독 청렴을 강조해온 이 시장의 말이 무색하게 광주시는 최근 2년 연속 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 등급을 받아 시민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의 업무 처리 절차 및 조직 문화, 부정부패, 비위 사실 전반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관련한 부정 사실 확인 시 즉각적이고 엄중히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 전국 행정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 580곳을 대상으로 한 청렴도 조사결과 발표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하위 등급인 5등급 평가를 받았다.

첨렴도 조사는 해당 기관 행정서비스를 경험한 국민(외부청렴도), 기관 내부 직원·전문가·업무 관계자(내부청렴도)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 부패사건 발생 현황을 골고루 반영해 종합청렴도로 평가한 내용이다.

광주시는 외부청렴도와 내부청렴도 모두 4등급을 받았다. 전국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5등급을 받은 곳은 광주와 부산 2곳 뿐이다.

광주시에서는 그런데도 민선 7기 들어서만 민간공원 특례사업 등과 관련해 3~4차례나 압수수색이 반복됐다. 민간공원 특례사업 수사로 인한 압수수색이 3차례 이어지는 등 이번까지 모두 6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광주호’ 선장의 손발 노릇을 하는 비서실이 연루된 이번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민선 7기 광주시정은 씻기 힘든 치명상을 입고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광주시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이 시장의 공직자를 대하는 마인드가 주인을 섬기기만 하라는 ‘공복’인지 아니면 주인의식을 가진 참다운 공무원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며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근본적 대응방안을 고민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