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1심 각하…피해자들 “한국 법원 맞나”

입력 2021-06-07 14:07 수정 2021-06-07 15:08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임씨의 아버지인 임정규 씨는 일제 치하 당시 일본 나가사키로 강제 노역을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연합뉴스

법원이 7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이날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고 패소 판결과 동일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판결에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송대리인인 강길 변호사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봐야 하지만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며 “(배상)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심판 대상으로 적격이 있다는 것인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강제로 징용돼 임금도 받지 못한 부당한 상황이기에 최소한의 임금과 그에 해당하는 위자료는 배상이 돼야 한다”며 “한일 관계 역시 그 같은 기초 위에서 다시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법원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갔던 임호철(85)씨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으면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며 “한심한 결과다. 한국 판사와 한국 법원이 맞나.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입을 열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분노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단체 장덕환 대표도 “선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우리에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법원이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통지하지 않고 오는 10일에서 이날로 판결 선고를 앞당겼다”며 “사전에 연락도 예고도 없이 (선고)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여러 소송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피해자들은 17곳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곳에 대해서는 소송을 취하했다. 앞서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는 다르게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기업들이 1인당 1억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