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지만 공군 당국의 묵살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군 이모 중사가 생전 부대 상관들의 지속적인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정황들이 낱낱이 공개됐다.
KBS는 이 중사 남편의 진술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생전 이 중사가 겪은 극심한 고통의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며 관련 내용을 6일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인 장모 중사는 성추행 사건 당일 밤 이 중사 숙소까지 따라가며 집요하게 사건 무마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 중사는 “신고할 거지? 신고해봐”라고 조롱했고 이 중사를 숙소에서 불러낸 뒤 무릎을 꿇고 없던 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 중사는 자신에게 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가해자가 떨어지길 바랐다고 남편은 전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상관에게 신고하자 회유와 압박이 돌아왔다. 부대 상관들은 문제가 불거지면 회식 참가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협박했고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게 하겠다며 이 중사를 회유했다.
이 중사는 “분하고 악에 받쳐 바락바락 울면서 ‘그러면 보고를 안 할 테니 장 중사와 완벽히 분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 중사 남편은 “이 회유 자리에 노모 상사와 노모 준위가 있었다고 이 중사가 말했다”며 철저한 수사를 요청했다.
노 상사는 이후 이 중사에게 ‘말 좀 잘해 달라’고 자신에게도 합의를 종용했다며 “용서가 안 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 중사는 부대를 옮긴 뒤에도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킨 여군으로 지목됐다는 압박을 느껴야 했고 예정된 정신과 상담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사는 정기 인사 시기를 맞춰 부대를 옮길 예정이었지만 직속 상관들의 2차 가해로 사무실 복귀가 불가능했기에 고민하다 특별 전속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 중사는 결국 지난 5월 성추행 피해를 당했던 제20전투비행단에서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출됐다.
다른 비행단으로 옮겨가게 된 이 중사는 새 부대 출근을 하루 앞두고 대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2주간 자가격리를 마쳤던 이 중사는 “PCR검사 지시를 받은 게 없다”고 했고 대대장은 “전속 때 검사는 당연한 것 아니냐. 당장 검사를 받으라”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결국 이 중사는 보건소에 가 코로나19 검사를 받느라 예정됐던 정신과 상담은 받지 못했다고 남편은 진술했다. 전출 부대에선 이 중사에게 청원휴가와 격리 기간 방문한 곳을 모두 보고하라고 했고 이 중사는 기억에서 꺼내고 싶지 않은 정신과 의원과 상담실 방문 등 모든 내역을 제출해야 했다.
이 중사는 비행단장에게 전속 보고도 해야 했다. 이 중사는 “어디 그 사고 난 여군 한번 보자”는 식으로 느꼈고 “모든 집중을 받는 것 같아 불편해했다”고 남편에게 전했다. 이 중사는 ‘관심 간부’ 취급하는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월 21일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반나절 휴가를 신청한 이 중사에게 돌아온 것도 ‘보고 똑바로 하라’는 상관의 면박이었다. 이 중사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한편 사건을 초기에 넘겨받은 공군 검찰이 두 달간 가해자 조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는 등 안이하게 대처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은 이 중사가 3월 초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약 한 달 만인 4월 7일 제20전투비행단 군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공군검찰이 가해자인 장 중사를 상대로 첫 피의자 조사를 한 건 55일 만인 지난달 31일로 파악됐다.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다. 이마저도 첫 조사 일정을 이달 4일 이후로 잡아놨다가,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되자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 중사 휴대전화도 같은 날 뒤늦게 확보됐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실은 휴대전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던 군 검찰이 장 중사가 ‘순순히 제출해’ 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장 중사가) 본인에게 불리한 내용들을 충분히 삭제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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