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자 사전 지원, 공무원 ‘의무 없는 일’이냐 아니냐

입력 2021-06-06 18:19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월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내정자를 사전 지원(내부자료 제공)하도록 한 건 실무자의 고유한 권한에 반하는 지시이므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난 4일 서울고법 형사 6-1부(부장판사 김용하) 심리로 열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밝힌 항소 이유 중 일부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과 내정자를 앉히기 위한 현장 지원(내정자를 앉히도록 높은 점수를 준 행위 등)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의무 없는 일’에 대한 원심의 법리 오해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모두 전제돼야 한다. 1심 재판부가 사표 징구 등에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무죄를 선고한 이유도 ‘의무 없는 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되려면 직무집행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됐어야 한다는 게 그간 판례다. 1심 재판부도 “관련법상 공무원들에게 공공기관 임원 임명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이 부여돼있지 않다”며 “이들의 행위는 김 전 장관의 직무집행을 보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과도 비슷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시킨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에 대한 미행이 직무집행을 보조한 행위라고 봤다. 반면 지난 3월 대법원은 “국정원 실무자들에게도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이 부여돼있다”며 일부 무죄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결국 김 전 장관 항소심도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 등에 대한 해석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환경부 공무원에 있어 직무집행의 기준은 공무원 임기제고, 임기를 침해하지 않는 방법으로 (직무 집행을) 해야 한다”며 사표 징구가 절차를 위반한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검사의 기소나 1심의 유죄 판단은 청와대나 환경부가 인사를 협의하거나 적정한 사람을 임원에 임명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위법하다고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