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15%로 합의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지출이 늘어난 만큼 다국적기업들이 더 이상 조세회피처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기업을 유치한 국가들의 항의를 잠재워야 하는 등 산적한 과제도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콘윌에서 열린 G7 재무장관회의에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안이 합의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합의안은 11일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통과되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합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21%를 제안했지만 더 많은 국가들이 합의에 따르도록 세율을 조정했다”고 전했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21세기에 걸맞은 더 공정한 조세제도를 만들어냈다”면서 “G7이 세계경제회복에 집단적 리더십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이번 합의는 기업에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고 세계경제가 성장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법인세율을 적용 받는 구체적인 기업 대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익률이 10% 이상인 기업을 기준으로 하면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의 IT기업들이 다수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익 일부를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법인세로 납부하게 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번 합의안 적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들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합의안을 내놓은 것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풀었던 곳간을 채우기 위한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FT는 “각국 정부는 다국적기업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예상보다 큰 매출을 올렸다는데 공감했다”면서 “법인세를 통해 ‘팬데믹 지출’을 회복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실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낮은 법인세율을 앞세워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했던 국가들의 반발을 잠재워야 한다. 아일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 21.5%보다 10%포인트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미 구글과 애플 등이 유럽본부를 수도 더블린으로 이전했다.
파스칼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합의 발표 직후 아이리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G7 합의를 이행할 경우 20억 유로(2조7039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데, 지난해 법인세 수입의 20%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아시아의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홍콩이 있는 중국 역시 G7 합의안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은 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의 70%가 유입되는 곳이다.
유럽국가들이 제정한 디지털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2018년부터 구글과 아마존 등 IT 기업들이 법인세를 피하려고 하자 ‘디지털세’를 제정했다. 미국은 디지털세가 자국기업을 겨냥한다며 반발했다. 이들 국가는 회담에서 법인세율 합의가 최종적으로 타결되면 디지털세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G7은 11일 정상회의에서 이번 합의안을 통과시킨 후 다음달 G20 재무장관회담과 10월 G20 정상회담에서도 최저 법인세율 합의를 제안할 방침이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