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담으려 급식실 쓰레기통까지 샀다”…친환경 캠페인 논란

입력 2021-06-06 16:39 수정 2021-06-06 18:53
롯데시네마가 지난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진행한 '용기내 캠페인' 참여자들이 팝콘을 사가기 위해 가져온 특색있는 용기들. 롯데시네마 제공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모(34)씨는 지난 5일 김치통 하나를 들고 극장을 찾았다. 롯데시네마가 ‘환경의 날’을 맞아 진행한 친환경 이벤트 ‘용기내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용기내 캠페인은 다회용 식품용기를 가져오면 6000원에 팝콘을 꽉 채워주는 이벤트다. 김씨는 재밌는 이벤트라고 생각해 극장을 찾았으나 기분만 상해서 돌아왔다.

김씨는 “급식실에서나 쓸 법한 초대형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가져온 사람들까지 있었다”며 “거기에 팝콘을 꽉 채우려면 다른 사람들은 한두시간씩도 기다려야 했다. 막상 가서 보니 ‘선을 넘었다’ 싶은 사람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시네마가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환경의 날’을 상기시키려는 취지로 진행한 이번 이벤트는 ‘본질을 벗어난 실패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구매하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다.

이벤트 참여자 중 일부는 평소 가정에서 쓰지 않는 대형 쓰레기통에 팝콘을 받아가는 등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자는 이벤트 취지를 거스르는 상황이 빚어졌다.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평소라면 쓸 일 없는 플라스틱 제품을 일부러 구매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롯데시네마 '용기내 캠페인' 내용을 알리는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물. 인스타그램 갈무리

MZ세대(1980~2000년대생)를 겨냥한 접근 방식, ‘펀(fun) 마케팅’이 문제였다. 롯데시네마 측은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어떤 용기든 가능하다’며 김치통, 급식 배식용 바트 등 팝콘을 담는 그릇으로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지만 재밌는 용기에 팝콘을 받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면서 오히려 친환경 캠페인 동참의 본질을 한참 엇나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소 쓰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통, 불필요한 대형 정리함을 구매했다는 인증샷의 등장은 오랫동안 친환경 소비에 동참해 온 이들 사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너무 큰 용기를 가져와 다른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생겼다. 기계가 과부하 돼 가동을 멈추면서 팝콘을 만드는 시간이 지연되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재밌으려고 참여한 이벤트에서 ‘재미없는’ 상황이 생겨났다.

스테인리스 김치통을 들고 아이와 함께 롯데시네마를 방문한 한 여성은 “팝콘도 먹고 다회용기 사용 노력도 알려주려고 아이와 함께 왔다가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갔다”며 “재밌겠다는 마음도 있었는데 공짜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재미로 접근한 친환경 노력은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환경 활동의 하나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려는 ‘탄소발자국 저감’에 노력하는 분위기인데, 불필요한 기획 행사로 탄소발자국 줄이기로부터도 멀어졌다. 눈길은 끌었을지 모르겠으나 친환경 노력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