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테니스 선수를 13년 만에 볼 수 있을까. 권순우(91위·당진시청)라면 가능하다. 프랑스오픈에서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3회전 진출의 성과를 낸 권순우의 눈은 이제 도쿄 아리아케 테니스 파크로 향하고 있다.
권순우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3436만7215유로·약 469억8000만원) 7일째 남자 단식 3회전에서 마테오 베레티니(9위·이탈리아)에 0대 3(6-7<6-8> 3-6 4-6)으로 패했다.
세계 톱랭커를 상대로 기죽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준 한 판이었다. 키 196㎝의 베레티니는 최대 시속 216㎞의 강서브를 앞세워 에이스 23개를 올리는 등 파워로 권순우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권순우도 1세트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가 3-6에서 6-6까지 따라 붙는 등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베레티니는 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권순우는 메이저대회 첫 3회전(32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메이저대회 준우승 경력의 케빈 앤더슨(100위·남아공)을 1회전에서, 메이저대회 16강을 밟아봤던 안드레아스 세피(98위·이탈리아)를 2회전에서 잡아내면서다. 큰 대회에서도 멘털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게 호성적의 비결이다. 권순우는 2회전 승리 후 “올 초에 감정 기복이 심했는데 (새로 호흡을 맞춘) 유다니엘 코치님이 기술적인 조언은 물론, 많은 대화를 통해 멘털을 잡아주셔서 집중력이 좋아진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권순우의 다음 목표는 두 달도 안 남은 2020 도쿄올림픽 메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회에서 랭킹 포인트 90점을 획득한 권순우는 프랑스오픈 종료 후 발표될 세계랭킹에선 랭킹을 79위까지 12계단 올릴 수 있을 걸로 기대된다. 올림픽 본선행이 가능한 랭킹이다. 도쿄올림픽 단식 본선엔 오는 14일자 세계 랭킹 기준 상위 56명이 자력으로 나설 수 있다. 하지만 한 국가에서 최대 4명까지만 출전할 수 있어 랭킹 56위 이내 선수들 중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선수가 빠지게 된다. 여기에 매 대회 때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다수 발생하고,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에 출전을 망설이는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라 권순우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대한테니스협회 관계자는 “직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100위권까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며 “여러 변수가 있지만 지금 순위면 (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현재 협회와 선수 측이 올림픽에 가는 쪽으로 준비를 시작한 상태”라고 밝혔다.
권순우가 도쿄로 향한다면 이형택(45·은퇴)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에 이어 한국 선수로선 13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엔 복식에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는 3회 연속 단식에서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룬 이형택의 단식 최고 성적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2회전(32강) 진출이다. 당시 이형택은 랭킹 41위였던 마리아노 사발레타(아르헨티나)에 2대 1(4-6 6-3 6-2) 승리를 거둔 뒤 랭킹 20위였던 페르난도 곤잘레스(칠레)를 만나 0대 2(5-7 2-6)로 패했다.
2회전 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나섰던 김봉수(61·은퇴)의 기록 함께 한국 선수 중 유이한 승리 기록으로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남아있다. 최근 기술은 물론 멘털·체력적인 발전까지 이뤄낸 권순우이기에 한국 선수 최초 올림픽 16강 이상 진출도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다.
이형택 부회장은 “올림픽은 국가를 대표해 나가는 대회라 다른 대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이 있었다”며 “권순우가 이번 대회에서 포핸드 타이밍이 빨라지고 슬라이스도 적절히 쳐주는 등 게임 운영이나 자신감 측면에서 많이 좋아졌다. 올림픽은 권순우가 좋아하는 하드코트에서 열리고 ‘개인 권순우’가 아닌 ‘한국 권순우’로 나가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면 좋은 성적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