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지점을 연결하는 은행 콜센터 상담사들이 지점 직원들의 폭언과 무시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시행으로 고객 막말과 폭언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생겼지만 내부 직원 사이의 보호 장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원·하청 구조에서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기도 어려워 상담사들의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6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콜센터 상담사 A씨와 한 시중은행 경기지역 지점 직원과의 대화록에는 A씨를 가리켜 “미친 상담원”이라고 하는 폭언이 담겨 있다. 이 지점 직원은 2019년 5월 고객이 전달한 내용을 A씨가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능력이) 안되면 자리에 앉아 상담하지 말든지”라며 “고객센터에서 상담한 것인데 마치 내가 상담한 것처럼 메시지를 보내는 미친 상담원”이라고 막말을 했다. A씨는 “(해당 지점 직원은) 저희 내부에서도 ‘블랙리스트’로 불릴 정도로 무시 발언을 수시로 하는 사람”이라며 “최근에도 상담사의 전화 연결을 뚜렷한 이유 없이 받길 거부하거나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무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담사 B씨도 “지점 직원과의 상담 중에 혼이 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B씨는 지난달 7일 미성년자 고객의 통장 개설과 관련된 문의를 받은 뒤 서울지역 한 지점에 정확한 답을 받기 위해 전화했다고 한다. B씨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해당 지점 직원은 B씨에게 “기본적인 걸 지점에 물어보는 거냐”며 “(상담사) 이름이 뭐냐, 무슨 팀이냐”라고 대뜸 따져 물었다. 고객 문의 사항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말을 끊으며 “전화하지 않고 확인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콜센터 상담사 직원들은 고객으로부터 대출이나 예·적금 상담을 받으면 지점에 연결하는 업무를 한다. 지점과 연락이 빈번한 상황이지만 무시와 폭언에 시달리는 일이 잦다. 산안법 시행 이후 폭언이나 업무방해를 하는 고객 전화는 상담사가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 적용되지만 내부직원 폭언 등에는 적용되지 않아 고스란히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상담사 C씨는 “고객 문의를 지점에 연결했는데 버럭 화를 낸 직원도 있었다”며 “우리를 협업 대상이 아니라 아래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 콜센터 용역업체 노조 관계자는 “상담사들이 한 번 폭언을 한 직원이나 지점에는 업무를 연결하기 꺼릴 수 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폭언’이 반복되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고충을 털어놔도 대부분 원청(은행 본부)까지 보고되지 않거나 알려져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2~3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상담업체가 원청인 은행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긴 힘들다. 실제 A씨가 피해를 호소한 해당 은행은 콜센터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해당 직원의 폭언을 인지하고도 해당 지점장이 주의를 주고 용역업체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는 데 그쳤다. 문제가 된 직원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이에 대해 해당 은행 측은 “용역업체 소통 채널을 통해 파악된 (폭언 등 막말)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막말 내용과 관련해선 “욕설을 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상담사는 “회사가 곧 재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문제제기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일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