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남자 국가대표팀이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3연전 중 첫 경기를 대승으로 출발했다. 유럽파 선수들을 중심으로 전원이 고른 활약을 보이면서 상대를 압도한 끝에 만족할 만한 승리를 거뒀다.
대표팀은 5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경기에서 5대 0 승리를 거뒀다. 전반 황의조의 골을 시작으로 포문을 연 대표팀은 전반 종료 직전 남태희의 추가골에 이어 후반 김영권과 권창훈이 득점하고 다시 황의조가 다섯 번째 골을 집어넣으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대표팀은 이날 가동할 수 있는 최고 전력에 가까운 멤버를 내보냈다. 황의조를 전방에 세우고 2선에 손흥민과 남태희, 이재성이 섰다. 권창훈이 공수를 오가고 정우영이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다. 수비진에는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김민재와 함께 김영권이 가운데를 맡았다. 측면에는 홍철과 김문환이 위치했다.
이날 고양종합운동장에는 관중 4057명이 허용된 경기장 정원 10분의 1 좌석을 가득 채웠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선수단과 함께 입장하는 어린이들은 에어볼 안에 들어갔다.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리는 와중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 위로 대형 태극기가 다시 등장했다.
한국은 초반부터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공격 상황에서 전원이 센터서클 위로 올라가 경기장의 4분의 1 면적에 선수들이 모두 몰린 모습이 연출됐다. 전반 3분 만에 손흥민의 헤딩골이 골로 연결될 뻔했으나 부심은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측면 크로스 위주로 상대를 몰아붙이던 한국은 경기 시작 10분이 채 되기 전에 선제골을 넣었다. 후방에서 왼쪽 풀백 홍철이 전방으로 길게 떨궈준 공을 앞으로 돌진하던 황의조가 헤딩으로 상대 골문에 밀어 넣었다. 상대 골키퍼가 나왔지만 공을 제대로 펀칭해내지 못한 것도 잘못이었다.
내려앉은 상대는 어렵게 공을 잡을 때마다 왼쪽 측면을 돌파하며 역습을 시도했지만 중앙 수비 짝인 김영권, 김민재에게 번번이 차단당했다. 이들 앞에 선 정우영은 공격 전개 기점 역할과 상대 공격 저지선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황의조를 위시한 공격진은 전방에서 활발한 압박으로 기회를 노렸다.
한국은 전반 동안 계속해서 슈팅 기회를 잡았으나 상대 골키퍼 차르이예프 라술의 선방에 막혔다. 손흥민과 황의조, 홍철이 연달아 찬 슈팅이 모두 막혔다. 후반 43분 권창훈이 상대 수비 패스 실수를 틈타 일대일 기회를 맞았으나 이 역시 골키퍼가 막아냈다.
다행히 한국은 전반 종료 직전 득점을 추가했다. 권창훈이 황의조와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은 뒤 때린 중거리 슈팅을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내자 이를 남태희가 쇄도하며 골로 만들어냈다. 자신의 50번째 대표팀 경기를 기념하는 골이었다.
후반 들어 상대가 비교적 올라선 덕에 한국 공격은 더욱 수월하게 진행됐다. 후반 12분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수비보다 머리 하나 높이 더 위로 떠서 골문 중앙으로 떨구자 김영권이 이를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80번째 대표팀 경기를 맞은 김영권은 반지 세리머니로 자축했다.
앞서 전반에 골 기회를 놓치며 아쉬워했던 권창훈도 득점 대열에 합류했다. 권창훈은 프리킥 기회에서 손흥민의 무회전성 프리킥 슈팅을 상대 골키퍼가 어렵게 쳐내자 곧바로 쇄도해 구석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사실상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결정짓는 골이었다.
상대가 의욕을 잃은 뒤에도 한국의 공격은 빗발쳤다. 후반 28분 권창훈이 좌측면 깊숙한 곳에서 공을 따낸 뒤 상대를 등지고 있던 손흥민에게 넘겨주자 손흥민이 유려한 공 터치 두 번으로 상대를 따돌린 뒤 중앙으로 돌진했다. 손흥민이 좌측으로 쇄도하는 권창훈에게 공을 넘겨주자 권창훈은 이를 다시 낮은 크로스로 연결했고 황의조가 이를 힐킥으로 기술적인 마무리를 선보이며 자신의 두 번째 득점을 완성 지었다.
경기 종료 뒤 선수단은 트랙을 돌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환호하는 관중들이 관중석 펜스 앞으로 몰리면서 한동안 방역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뒤늦게 주의 방송이 나왔지만 이미 상황이 대부분 끝난 뒤였다.
야즈굴리 호자겔디예프 투르크메니스탄 감독은 “한국의 수준이 우리보다 높다는 걸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날 첫 출전에도 불구하고 대활약한 골키퍼 차르이예프에 대해서는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편 같은 날 같은 조 레바논은 앞서 열린 경기에서 스리랑카를 3대 2로 꺾었다. H조 최약체로 꼽히는 스리랑카는 예상을 깨고 2득점 하며 분전했으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한국은 9일 스리랑카전에 이어 13일 2차 예선 마지막으로 레바논을 상대한다.
고양=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